내수소비 감소와 수출시장 위축으로 국내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차기 정부의 정책 혼선마저 겹쳐 국내 경제에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정권교체기에 따른 정책 혼선은 새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투자심리를 냉각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의 저하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망설이면서 경기가 더욱 위축되고 성장잠재력마저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우려되는 정책혼선 노 당선자는 지난 3일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증권분야 집단소송제와 출자총액 제한제도, 상속.증여세 완전포괄 과세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재계의 반대 여부에 상관없이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의 이같은 언급은 "(재벌개혁을) 점진적 자율적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1월8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는 앞서의 발언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인수위 관계자들은 '점진적 자율적 장기적'이라는 방식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인들이 노무현 정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재벌개혁 그 자체보다는 향후 정책에 대한 신뢰부족 때문"이라며 "정면돌파 의지 천명이 재벌개혁을 '타율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정책 일관성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계획과 경인운하 개발계획에서의 인수위 정책혼선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법(稅法)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국내기업 부설연구소들과 첨단기업들에 세금 유인을 제공해 '경제자유구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은 재경부의 문제 제기로 제동이 걸렸다. 인수위는 이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에서 갖기로 했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국정토론회'를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수도권의 비전과 역할'로 격(格)을 낮춰야 했다. ◆ 정책신뢰 회복이 급선무 경인운하 건설계획을 백지화한다는 발표(1월25일)는 바로 다음날 정순균 대변인이 "인수위 한 분과의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해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인수위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불신과 불안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지난달 2일 김대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가 "(대기업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가 '개인 의견'으로 무마한 것도 기업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인수위는 전력 철도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에 대해 "공익이 위협받을 소지가 크다"며 '원점 재검토' 방침을 밝혀 이미 민영화를 전제로 국제 입찰에 들어간 남동발전 매각마저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파문이 커지자 인수위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의 기본 골격은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이고 일관성있게 추진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외신들로부터 국가 신뢰도를 의심받았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정책 혼선으로 빚어진 심리 위축은 현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 개혁을 비롯한 새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들이 조속히 가닥을 잡아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만이 그나마 생산 투자 등 기업활동을 부추길 수 있는 핵심 처방이라는 진단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