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 드물게 자녀를 다섯이나 낳았고 40년째 서울 강북의 변두리(은평구 갈현동)에서 살고 있는 사람. 거창한 호텔식사보다 무교동 설렁탕집을 즐겨 찾으며 아직도 양주보다 소주를 더 좋아하는 신사. 그냥 보통 사람의 얘기가 아니다. 한때 대통령 경제수석에다 건설부 장관까지 지낸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프로필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리공고에 진학한 뒤 매일 20리 길을 뛰어서 통학했고, 대학 시험날엔 어머니가 싸준 고구마 5개로 점심을 때웠던 기억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박 총재는 "한 동네에서 40년째 산다니까 서민들이 '우리 편'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하지만 청문회를 무사통과할 만큼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정부가 연일 부동산대책을 내놓는 가운데 통화정책을 주무르는 한은 수장으로서 쓴소리도 많이 듣고 있다. 유동성이 흘러넘쳐 투기를 부추기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박 총재는 "금리를 왜 안 올리느냐고 전화하거나 한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분들이 많다"며 "이런 서민들의 의견을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대책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대뜸 "신도시 추가 건설로는 투기를 잡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부 장관 시절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를 입안했던 그는 '강북개발특별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기에서 '강북'이란 자동차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서울의 주거밀집지역을 뜻한다. "수만평 단위로 재개발해서 40∼50평짜리 고급.고층 아파트를 짓고 단지를 공원화하는 등 '강북 고급화'에 주력해야 한다. 이런 사업은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고 서울시에선 도로 확충을 맡아야 한다. 이때 생기는 개발이익으로 땅이나 집 주인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할 수도 있고 교육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강남 투기를 잡기 위해 강북을 개발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 집이나 사무실로 격려전화가 많이 온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교육문제에 관한 나름의 소신도 밝힐 생각이다. 환갑을 훌쩍 넘겼는데도 체력은 젊은 직원들 못지 않다. 그는 "학창시절 뛰어서 통학한 게 기초체력이 된 듯하다"고 얘기한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은행장들과의 술자리에서 박 총재가 끝까지 버텨 젊은 행장들이 놀라더라"고 귀띔했다. 지난 4월 한은 총재로 부임한 뒤 바빠서 책을 못읽는 대신 한은 조사국 이코노미스트들이 올리는 보고서들과 해외 경제주간지를 주로 읽는다. 수재민들을 생각해 골프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고 한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 ----------------------------------------------------------------- [ 약력 ]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이리공고.서울대 경제학과(55학번).미 뉴욕주립대(올바니) 경제학 박사 1961년 한국은행 입행 1976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84년 중앙대 정경대 학장 1986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1988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989년 건설부 장관 1993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1999년 한국경제학회 회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