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규칙(Rules of the Game)'이라는 말이 있다. 룰을 분명하게 정해서 경쟁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룰이 불분명한채 '규칙의 게임(Game of the rules)'이 난무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100? 달리기를 한다고 하자.일단 규칙이 분명히 정해진 후에는 달리기만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달리는 도중 자꾸 규칙이 바뀌거나 바뀔 가능성이 높다면 어떻게 될까. 주자들은 잘 달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관철시킬까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동통신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양상이 꼭 이와 같다. 기업간이나 정부와 기업 사이의 공방을 보면 하나같이 규칙을 둘러싸고 싸우는 꼴이다. 비대칭규제 도입이나 합병조건을 놓고 업계에서 일어나는 다툼이 그렇고 상호접속 문제 및 망의 개방과 관련해 아예 정부와 특정기업이 벌이는 공방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력의 본질보다 경쟁의 조건을 바꾸거나 지키는 데 안간힘을 쏟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근원적으로 보면 정부가 신뢰성과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경쟁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한 탓일 것이다. 혹은 정부가 은연중 이미 특정집단에 포획돼(captured) 있거나 포획될 수 있다고 기업들이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규제에 강하게 집착한다든지 억지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얼마 전에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예외대상 확대 등 규제완화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역시 따지고 보면 끊임없는 규칙의 공방끝에 나온 것에 다름아니다. 정부가 언제까지나 예외조항이라는 것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한 이런 '규칙의 게임'은 앞으로도 불가피해 보인다. 예외조항에 따라 기업간 이해관계가 다를 것이고 보면 기업들의 에너지가 어디로 향할지는 너무도 뻔하다. 기업이 '규칙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몰두해야 할 것은 사실 따로 있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표준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 표준하에서는 후발기업이 선발기업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때 시도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표준을 가지고 뒤엎는 일이다. 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규칙의 게임'들은 자칫 기업의 경쟁력 저하만 초래할 위험이 높다. 부패하거나 부처간 영역다툼이 심한 국가일수록 '규칙의 게임'은 판을 치게 된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