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아이(DPI)는 전통적인 제조업체다. 지난 56년간 한눈팔지 않고 오직 페인트 잉크분야에서만 종사해온 기업이다. 최근들어 대부분의 전통제조업체들이 힘겨워하는데도 노루표페인트 브랜드의 DPI는 줄곳 성장하고 있다. 경상이익도 계속 증가추세다. 불황을 모르는 기업이다. 어떻게해서 노루표는 이렇게 불황을 타지 않을까. 그 비결은 무엇일까. DPI가 이렇게 불황에도 잘나가는 이유는 경영구조를 분사화(分社化)한 덕분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이 회사는 최근 컬라강판용 도료부문을 주식회사 DCC로 분사시켰다. 이에 앞서 네덜란드의 악조노벨과 합작으로 선박용도료 업체인 IPK를 분사시켰으며 일본의 NBC와 합작해 자동차도료부문을 주식회사DAC로 분리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분사전략은 대기업들이 겪어야 하는 비능률성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제품개발의 신속성 덕분에 분사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같은 독특한 경영전략은 창업 2세인 한영재(46)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 회장은 미국 보스턴대 경영학석사(MBA)출신으로 전통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특이한 경영기법을 창안해낸 것이다. 그는 지난 55년간 사용해온 "대한페인트.잉크"라는 회사명을 "DPI"로 바꾸고 분사를 통해 경영혁신을 이룩해냈다. 특히 한 회장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엔 민첩성 개방성 유연성이 요구되는 만큼 경영시스템을 완전히 디지털화한 것이 불황극복에 주효했다고 말했다. 제품설계에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네트워크화한 것이다. 첫째 "지식창고"를 만들었다. 이 지식창고엔 도료 등에 관한 각종 전문지식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각종 자료를 함께 쓰고 노하우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게 했다. 둘째 인터넷 주문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동안 페인트는 대리점에 가서만 살 수 있는 폐단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루표는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고 배달을 해주는 체제를 만들었다. 셋째 화상회의체제를 갖췄다. 오프라인상으로만 이뤄지던 영업회의나 월례조회등을 화상회의나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하게 했다. 이 화상회의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영업에 반영돼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틀이 됐다. 매출도 남부럽지 않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이 2천2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지난해 2천68억원보다 6.3% 증가한 것이다. 경상이익은 지난 상반기 95억원을 올렸다. 이런 불황에도 계속 이익을 올리기에 바쁘다. 덕분에 부채비율은 95%로 낮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