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 기획예산처 건물은 요즘 '북새통'이다. 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타 부처 공무원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만차(滿車)다. 휴게실 복도 계단 가릴 것 없이 서류 꾸러미를 한 짐씩 들고 서 있는 공무원들로 가득하다. '예산철'이 돌아왔다. 마감시한이었던 지난 5월말까지 52개 중앙부처가 요구한 내년도 예산은 1백28조2천4백14억원. 예산처는 이중 20조원 가량을 심의 과정에서 삭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4천여개 사업에 대해 지난달 12일부터 40여일 예정으로 진행중인 '1차 심의'는 그 첫 작업. 한 푼의 예산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공무원들의 '작전'은 이때부터다. 예산처로 '출근'하는 각 부처 예산 담당자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대표적인 것이 '읍소(泣訴)형'. 서기관 사무관 주사 가릴 것 없이 4∼5명이 한꺼번에 찾아와 90도 인사부터 해댄다. 이들은 점심시간이나 공휴일을 집중적으로 공략, 최대한 많은 면담시간을 확보한다. 무더위에 고생이 많으시다며 '인삼엑기스' 등 영양제를 사들고 오기도 한다. 예산처가 각 부처 예산 요구를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재정정보 관리시스템'을 지난해 6월부터 운영중이지만 예산처를 직접 방문해 예산 내역을 설명하겠다는 부처 공무원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투사(鬪士)형'도 적지 않다. 자신의 부처 사업이 국가적 과제라는 설명을 강조한다. 예산실 실무자가 삭감을 주장하면 '멱살잡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전투력'을 과시한다. 예산실에서 들리는 고성은 이들이 주인공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방임(放任)형'도 있다. 노력해 봤자 별반 달라질게 없다는 태도. 관련 자료만 제출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대신에 예산 심의가 마무리될 때쯤 다시 나타나 문제를 제기한다. 각 부처 사업에 대한 1차 심의가 끝나면 예산실 실무자도 시험을 치른다. 예산실장 등 실.국.과장으로 구성된 '심사단' 심사가 그것. 이 자리에서 예산실 실무자들은 해당 예산의 내력, 예산 반영 이유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변하지 못하면 실력없는 공무원으로 낙인 찍힌다. 이에 따라 예산실 공무원들은 1차 심의가 시작된 6월 이후 쉬는 날이 없다. 여름휴가는 아예 없다. 예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확정되는 9월말이나 10월초께 돼야 하루 정도 '눈치'를 봐가며 일요일을 챙긴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