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벤처의 만남"

아마 그건 필연적 숙명인지 모른다.

한국적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췄으나 비대한 덩치로 탄력을 잃은 대기업, 도전정신으로 무장돼 폭발적 가능성은 안고 있지만 조직과 유통망이 미흡한 벤처기업.

서로의 강점과 약점은 마치 요철을 연상케 한다.

그 요철을 맞춰 가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하다.

경쟁적인 짝짓기 양상으로 비춰질 정도다.

어쨌든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본격적인 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한때 경쟁과 갈등의 모습을 보였던 대기업과 벤처가 어깨를 걸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 왜 손잡아야 하나 =물론 서로 살기 위해서다.

대기업과 벤처가 손잡지 않으면 둘다 성공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실제 그렇다.

한국의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서로의 장점과 약점이 묘하게 보완성을 갖는다.

대기업의 경우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면 벤처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전부인 벤처기업도 대기업의 생산기반과 유통망을 활용하는게 성공의 관건이다.

"대기업과 벤처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가 가진 장점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셈이다"(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결국 각자 핵심역량 이외의 취약 부문을 아웃소싱해 경쟁력을 높이는 윈윈(win-win)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다양한 협력모델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협력방식은 크게 네가지다.

우선 전략적 제휴.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손쉬운 방법이다.

출자관계 없이도 생산시설과 유통망 R&D 조직 등을 공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대표 이금룡, 오혁)이 LG홈쇼핑의 마케팅망을 이용하기 위해 최근 제휴를 맺은게 전형적 유형.

옥션은 이번 제휴로 LG홈쇼핑의 케이블TV와 인터넷 쇼핑몰(www.lghs.co.kr)을 통해 제품경매 서비스를 시작한다.

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한국디지탈라인이 SK텔레콤과 손잡고 중국의 무선인터넷 시장에 진출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무선인터넷폰 개발기업인 네오포인트가 한국통신프리텔과 미래형 스마트폰 단말기를 공동개발키로 한 것도 그렇다.

둘째 포트폴리오 투자가 있다.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돈줄을 끌어들이고 대기업은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협력이다.

이같은 투자는 작년부터 활발히 진행됐다.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은 이미 계열 벤처캐피털과 종합상사 등을 통해 수천억원을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벤처에 대한 지분투자는 자연스럽게 전략적 제휴로 연결되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새롬기술간 협력 모델이 바로 그런 형태다.

셋째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아예 인수합병(M&A)하는 것.

현대백화점이 한국형 검색서비스 선두업체인 까치네를 인수해 포털서비스에 진출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인터넷 사업 진출이 늦은 대기업이 새로 시작하는 대신 어느정도 시장을 선점한 벤처기업을 사들이는 것이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 크게 늘어날 협력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이 분사를 통해 벤처기업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형태도 있다.

대기업 입장에선 우수인력의 이탈을 막고 창업 단계부터 벤처와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쇼핑몰업체인 인터파크와 최근 새롬기술과 합병한 네이버컴 등이 모두 대기업 출신 분사기업이다.

김일섭 한국회계원장은 "대기업과 벤처의 협력은 지분투자-전략적 제휴-인수합병의 순서로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중요한건 신뢰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협력이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불신의 벽"이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대기업이 헐값에 회사 경영권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는다. 대기업은 벤처의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 서로 믿지 못하는 형식적 협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이장우 경북대 교수)

기업가치와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과 확실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건 물론이다.

이를 통해 성공적인 협력모델이 많이 나와야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공생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선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칫 섣부른 협력시도는 실패를 낳고 그것은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병석 기자 chabs@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