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전부총리, 김인호 전경제수석, 윤증현 재정경제원 금융실장 등
외환위기와 관련있는 전현직 고위관계자들은 외환위기 청문회가 열릴 것에
대비해 최근 잇달아 회동을 갖고 당시의 자료를 정리하고 논리를 다듬는 등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청문회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까지 지난 1-2년 동안의 정책대응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외환위기를 막기위해 총력을 경주했음을 입증한다는
계획하에 치밀한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결코 당시 정부측 책임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식으로 흘러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국민회의 한나라당
등 정치권의 책임 부분도 적지 않다고 말해 주목을 끌고 있다.

강경식 전부총리 역시 2일 밤 재경원 모간부의 상가에서 기자들을 만나
심경의 일단을 피력하고 재경원이나 자신이 외환위기를 몰랐다거나 대통령
에게 보고를 했느니 안했느니 하는 문제들은 의미가 없는 질문들이라며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강 전부총리는 특히 기아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당시 시장원리에 의한
해결을 추진하는 재경원에 대해 정치권이나 언론의 개입과 반발이 결코 적지
않았다고 말해 기아문제처리 과정과 결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재경원의 고위 관게자는 이와관련, 당시 정치권에서 기아에 대해 무조건
자금을 지원해 주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들이 많았고 이것이 기아문제에 대한
조속한 처리에 상당한 장애가 됐다고 강조했다.

재경원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왔던 작년
11월에도 정치권은 금융개혁법안 조차 처리해 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에서조차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취하면서
금융개혁법안들에 대한 표결을 기피했었다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또 환율 문제의 경우 이미 지난 96년말부터 재경원과 청와대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고 공개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대기업 재무
구조개선 등 낙후된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노동법 개정안을 비롯한 각종 개혁관련 입법을 국회에 제출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이 노동법 파동등으로 왜곡되면서 차례로 자절되고
말았던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강 전부총리 등 청문회에 서게될 관계자들은 따라서 경제운용과 관련된
총체적인 책임은 인정하되 정부가 위기를 은폐했다거나 위기를 구제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식의 마구잡이식 비난은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강 전부총리는 특히 이번 청문회는 과거와 같은 인신공격식 또는 취조식
청문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대통령 당선자가 공정한 청문회를
약속하고 있는 만큼 충분한 진술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