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금사의 집중적인 여신회수로 부도위기에 몰렸던 한라그룹이 3일 금융권
의 어음만기연장 등으로 고비를 넘겼다.

지난 2일 교환에 회부된 5천4백21억원의 어음을 제때 결제하지 못해
계열사별로 화의 또는 법정관리 신청직전까지 몰렸으나 금융권의 지원재개로
일단 회생의 기회를 다시 얻은 것.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한라그룹이 최근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은
우리기업의 "차입경영" 한계를 다시 보여준 것으로 볼수 있다.

의욕적인 신규투자와 사업확장이 불황과 금융위기가 함께 맞물리며 오늘의
어려움을 맞게 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한라그룹은 앞으로 강도높은 자구노력으로 경영을 최단시일내 정상화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한라그룹의 처한 어려움의 배경과 향후 진로를 알아본다.

<> 취약한 재무구조 =한라그룹은 지난해 5조1천40억원의 매출로 재계 11위
(기아그룹 포함), 총자산 6조6백27억원으로 12위기를 기록한 대그룹이다.

그러나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부채규모가 6조6천억원(11월 현재)에 이르는
등 재무구조가 좋지않은 상태다.

올들어 만도기계와 한라건설이 잇달아 증자하고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진행, 많이 호전됐다고 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 왜 위기에 몰렸나 =과다한 신규투자와 사업확장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전남 영암의 삼호조선소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은게 화근이
됐다.

삼호조선소는 92년 착공돼 95년부터 본격 가동됐으며 연간 선박건조능력이
1백50만GT(선박총톤수)에 달하는 세계 4위권 조선소이다.

한라는 가동이후 닥쳐온 조선시장의 불황과 당장의 일감 확보에 급급한
저가(저가)수주로 이중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한라는 삼호조선소외에도 90년대 들어 한라펄프제지(94년),
한라해운(90년), 마르코폴로호텔(96년), 자동차부품업체인 한라일렉트로닉스
(95년) 캄코(93년) 마이스터(91년) 등 10여개 계열사를 잇달아 창업할 정도로
신규투자를 강행해왔다.

그러나 한라펄프제지 한라해운 등 대부분의 계열사가 관련 내수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적자를 보는 등 그룹 경영에 오히려 부담만 주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사태 등 완성차업계의 부진으로 그룹의 주력사업인 만도기계 한라공조
등 자동차부품부문이 취약해진 것도 일조를 했다.

<> 향후 진로는 =한라그룹은 일단 위기를 넘긴 만큼 앞으로 강력한 자구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일부 계열사의 매각 등 사업구조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라그룹은 3일 오전까지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 계열사별로 자구책을
마련 화의나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과정에서 만도기계 한라공조 등 자동차부품부문은 화의신청쪽으로
한라중공업 한라해운 등은 법정관리 또는 매각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대로라면 한라그룹은 자동차부품사업을 중심으로 전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 현대그룹과의 관계는 =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성이다.

따라서 한라그룹의 향방은 형제그룹인 현대그룹의 의지와도 상당히
얽혀있다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현대그룹은 이날도 박세용 그룹 종합기획실장 등이 직접 금융기관을 돌며
한라의 부도를 막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현대는 국민투자신탁 등 계열 3개 금융사를 통해 한라의 CP
(기업어음)를 인수하는 등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해왔으며 한라중공업의
인수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 역시 한라중공업을 인수할 경우 상당한 부담을 감내해야 돼
한라그룹의 구조조정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