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잇달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되고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시장개방압력을 받는 "통상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 관련부처간
협조체제 미비로 효과적인 협상전략 마련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통상현안으로 등장한 주세분쟁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등 경제부처와 외교적 협상을 담당하는 외무부간
공조와 역할분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2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미국이 WTO패널설치를 요구한
주세분쟁의 경우 과거 패널판정에서 완패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무부처인 재경원과 통상외교을 담당하는 외무부간 보다 과감한 협조체제의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함께 패널설치 이후 닥쳐올 상대국과의 법률적 논쟁에 대비해 국내적인
법적절차와 제도개선은 재경원측이 담당하고 외국의 사례와 국제법적 준비는
외무부에서 맡는 등 명확한 업무분담도 절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동안 재경원측이 주세분쟁과 관련한 양자협상을 협상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세제실에서 담당토록한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상대국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주세제도를 "방어"할 국제변호사
선정과 관련해 관련부처간 다소 의견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한국산 컬러 TV에 대한 우리정부의 WTO제소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당초 미국을 제소하느냐,마느냐를 놓고 부처간 이견이 노출됐지만 이를
조정할 만한 권한을 가진 기구나 협의체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한국산 D램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조치판정건도 마찬가지다.

통산부는 지난 7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7월16일로 예정된 미국의 확정
판정에서 우리업계의 철회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WTO에 제소하겠다
고 발표했다.

하지만 통산부가 실제 이 문제를 WTO로 가져간 것은 다소 신중하지 못했다
는 지적이 관련부처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D램에 대해 3년연속 미소마진판정을 받긴 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WTO제소에 이어 패널설치됐을 경우 패널의 심의과정에서 우리업체의
덤핑사실이 확인되는 "최악의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보다 신중히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비교적 부처간 협조가 잘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한.미 자동차협상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협상에서 값비싼 외국차를 할부로 사서 중고차로 되파는 사기사건을
막기위해 등록원부에 "할부금융대상"이라는 스탬프를 찍는 방식으로 승용차
에 대한 저당권설정을 허용하는 방안을 놓고 관련 부처간 의견조정과정에서
일부 부처가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볼때 각 부처간 협조체제 미비와 혼선속에서 강대국들과의 통상
마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제.통상관련 부처들간의 상설
협의체 구성이나 부처간 이견조정 권한을 가진 기구설립 등이 절실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급증하는 외국과의 "통상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공무원
사회의 고질병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부처간 이기주의와 주도권다툼의
과감한 청산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