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가 본격적인 금융권 수사로 한단계 올라섰다.

수감중인 이철수 전제일은행장과 손홍균 전서울은행장에 이어 3일부터
이형구 전산업은행총재등 한보 특혜대출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은행장들을
차례로 소환 조사키로 한것.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구속에 이어 2번타자로 전현직 은행장들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선 검찰수사는 김영삼대통령이 "한보사태는 부정부패의 표본"
이라고 성격규정을 함에 따라 검찰의 일거수 일투족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됐다.

검찰은 우선 이전행장과 이전총재를 포함해 제일.외환.조흥.산업은행의
전현직 행장및 총재 8명을 대상으로 한보측에 거액 대출을 해주면서 커미션
을 받았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지난 95년 서울은행으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 한보철강의 주거래 은행이
된 제일은행의 이전행장은 3년이 채못되는 사이에 8천5백억원을 대출해 줬다.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전산은총재는 한보철강에 대한 거액대출의 물꼬를
튼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외에 1~2명 가량의 전현직 행장이 관련됐다는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져 소환조사에서 검찰이 대출 커미션 수수혐의를 밝혀내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금융권에 메가톤급 태풍을 몰고 오면서
대대적인 물갈이로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이 은행장들을 대하는 진짜 속셈은 물론 다른데 있다.

은행권에서만 3조6천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여신(대출
2조4천억원, 지급보증 1조2천억원)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 과연 "외압"
이 존재했었는지, 또 있다면 그 주체는 누구였는지가 검찰의 화두다.

그렇다고 검찰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은행장들을 불러
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관련 정치인에 대한 상당한 자료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죄목과 추가증거를 은행장들에게서 확인하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만 해도 7~8명 정도가
(구체적인 혐의가 있는 것으로) 떠 올랐다"며 "이들을 어떻게 사법처리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로 이 부분이 검찰이 은행장들에게 기대하는 대목이다.

정치인을 제대로 처벌하려면 단순히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돈을
받은 대가로 대출을 해주라는 청탁 내지는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를 입증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 액수가 너무 많을 때는 연간 법인은 3천만원, 개인은 1천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정치자금법 위반을 걸수 있지만 이보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
처벌법상 알선수재나 수뢰죄가 모양새가 좋다.

따라서 검찰이 2라운드에 임하는 자세는 한마디로 "탄력적"이다.

은행장의 개인비리를 밝히는 한편으로 거물 정객을 수뢰혐의로 잡아 들일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정총회장보다는 비교적 다루기쉬운 상대들인 은행장들에게
"플리바겐(진술을 잘해주는 대가로 구형량을 낮춰 주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수사테크닉도 동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