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의 중앙은행개편안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한국은행이
공식 반대입장을 천명하고 나섬에 따라 한은독립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당사자인 한은 임직원들의 반발과 협의요청에도 불구하고 재경원은
한은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확정,앞으로 국회 논의과정에서도 파란이
일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국은행이 밝힌 반대논리는 두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우선 재경원안에서 외견상 강화된 것처럼 보이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독립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금통위원의 구성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재경원차관과 정부측 추천인 5명등 과반수가 훨씬 넘는 6명의 위원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게 돼있다는게 한은의 주장이다.

은행들이 추천하는 3명의 위원도 사실상 정부의 영향권안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살필수 밖에 없는 탓이다.

결국 금통위원 전원을 정부가 선임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선 물가안정에 최선을 다해야할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할수 없다"(김영대 한은이사)는게 한은내의 공통된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한은이 중립적으로 물가안정을 소신있게 추진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처럼 재경원의 영향을 받는 금통위원중에서 재경원장관의
제청을 거쳐 금통위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것도 독소조항이라는
반응이다.

이는 재경원장관이 사실상 금통위의장과 한은총재를 통제할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감추어두고 있다는게 한은 간부들의 주장이다.

한은측은 특히 은행감독원을 떼내 금융감독원으로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 극력 반발하는 모습이다.

재경원이 이번 기회에 한은독립논의를 잠재우기위해 선수치기식으로
이같은 극약처방을 들고 나왔다는 반응이다.

"중앙은행의 은행감독기능을 강화해나가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할
뿐아니라 업무의 성격이 판이한 은행 증권 보험업을 하나의 기관이
감독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수 없다"(김원태 자금부장)는
지적에서도 은감원 분리에 대한 한은의 입장을 확인할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재경원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중앙은행개편안은 당사자인
한은측과 협의를 거쳐 수정돼야 한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홍재형부총리겸재경원장관과 김명호한은총재가 만나든지 아니면
중간간부들이 자리를 함께 하든지 어떤 형식으로든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의 이런 제안에 대해 재경원은 더 이상 협의가 필요없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한은의 요청에 아랑곳없이 은행법 개정안을 법제처 심의를
거쳐 원안대로 확정한게 이를 반증한다.

할 말이 있으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하라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은법 개정안과 금융감독원법 제정안은 사실상 국회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경제운영의 큰 틀을 정하는 이들 법안이 여야의 정치산술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박영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