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얼굴이 없어요"…졸업앨범에서 사라진 교사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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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사진 사라져…달라진 졸업앨범
딥페이크 공포에 교사 93% "악용 우려"
딥페이크 공포에 교사 93% "악용 우려"
졸업 시즌을 맞아 초·중·고교 졸업앨범을 받아든 학부모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번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졸업앨범에서 교사 개인 사진이 통째로 빠진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한때는 전 교직원 사진이 별도 페이지에 실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올해는 그 자리가 비어 있는 학교가 적지 않다.
◇"전 교직원 사진은 옛말" 학부모들 아쉬움 내비쳐
서울 성북구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졸업시킨 한 학부모는 "반 단체 사진에도, 반 페이지 맨 앞에도 담임 사진이 없었다"며 "아이들 사진만 있고 선생님 얼굴은 전혀 없다. 요즘은 다 이런 거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전의 한 학부모 역시 "교장·교감 사진은 크게 실려 있는데, 정작 1년 내내 아이를 돌본 담임과 다른 교사 얼굴은 하나도 없다"며 "2년 전 큰아이 졸업앨범에는 전 교직원 사진까지 실렸는데, 이번에는 담임 사진조차 빠졌다"고 덧붙였다.
반면, 교사 사진 삭제를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학부모는 "학기 초 상담 때 졸업앨범 촬영이 괜찮은지 묻더라"며 "학교 측이 개인정보보호법과 교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들었고, 다른 학교는 졸업앨범을 아예 제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현실이 심각하면 그러겠느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얼굴 대신 그림…이름도 표기 안 하기도
이날 기자가 서울 강서·양천 지역 초·중·고교 20곳을 확인한 결과, 2곳을 제외하고는 올해 졸업앨범에 교사 개인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 대부분 교장·교감 사진만 게재하거나, 교사 사진은 단체 사진에만 제한적으로 포함하는 방식이 많았다.현장 교사들에 따르면 2023년부터 교사 사진을 삭제하는 학교가 매년 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 대부분 학교가 교사 개인 사진을 싣지 않는 분위기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일부 학교는 교사 얼굴을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교장·교감 사진은 올리지만 이름을 표기하지 않는 방식도 택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교사 B씨도 "전국적으로 교사 사진은 물론 졸업앨범 자체에 대해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우리 학교도 교장과 교감 외에는 사진을 넣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에게 졸업앨범은 일생에 한 번 남는 기록이지만, 교사에게는 매년 새로운 졸업앨범이 제작된다. 적게는 수백 장, 많게는 수천 장의 얼굴 사진이 외부로 배포되는 셈이다. 한 번 유출된 사진은 사실상 회수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배경엔 '딥페이크 공포'…교사 93% "악용 우려"
2024년 한국교원총연합회가 전국 유·초·중·고 교원 3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1%가 졸업앨범 사진이 딥페이크 범죄나 합성물 제작 등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졸업앨범을 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도 67.2%에 달했다.
실제 지난해에는 인공지능(AI) 기반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교사와 학생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한 고등학생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해당 학생은 교사와 학생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수십 건의 허위 영상을 제작한 혐의를 받았다.
일부 학교는 QR코드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자료를 안내하거나, 앨범 수령 시 학부모에게 별도의 안내문을 배포하기도 한다. 단순한 기념물로 여겨졌던 졸업앨범이 이제는 초상권과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범죄 예방까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된 셈이다.
◇"교사는 매년 노출"…기념물에서 '위험물'로
문제는 악의적 범죄 사례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맘카페나 단체 대화방에서 졸업앨범 사진을 공유하며 외모를 평가하는 문화 역시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우리 아이 담임이 누구냐"며 앨범 사진을 요청하거나, 이를 두고 인상과 스타일을 평가하는 대화가 오간다는 증언도 나온다. 일상적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 동의 없이 얼굴과 이름이 공유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후에도 중고거래 사이트에 교사 사진을 올리거나, 교사 얼굴을 도용해 가짜 SNS 계정을 만든 뒤 학생 사진을 게시하는 사례가 전해졌다. 졸업앨범 속 사진이 온라인 공간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소비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교사들의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5년 차 교사 C씨는 "사진 한 장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쓰일지 통제할 수 없다"며 "졸업앨범이 더 이상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는 교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범죄 차단뿐 아니라 두려움 감소도 중요"
전문가들은 졸업앨범에서 교사 사진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이 범죄 예방과 심리적 안정 측면에서 일정 부분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 같은 조치로 실제 범죄가 얼마나 줄었는지는 추가로 분석해봐야겠지만, 잠재적인 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무엇보다 잠재적 피해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을 낮춰주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범죄를 얼마나 차단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범죄에 대한 두려움 수준을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범죄 예방의 요소"라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교사 사진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은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도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면 졸업앨범에서 사진을 삭제하는 것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범죄는 실행이 용이할수록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며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미 많이 노출돼 있고, 직업이 갖는 권위나 상징성 때문에 일부 가해자에게는 놀이처럼 왜곡된 심리적 보상을 주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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