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프미안이 재구성한 쇼스타코비치의 선율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러시아가 소련이었던 20세기 중반에는 극장과 음반사, 그리고 출판사까지 모두 국가가 직접 운영했다. 따라서 음악과 악보들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심의와 승인을 거쳐야만 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작곡가들은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큰 규모의 작품을 내놓기가 매우 어려웠다. 특히 오페라, 교향곡 같은 장르는 작곡가의 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여겨져, 곡의 구조나 화성 등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이념적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당시 음악가들은 검열의 부담이 비교적 적은 소규모 작품이나, 국가가 선전 목적으로 활용했던 영화·연극·발레 음악 작품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혀갈 수밖에 없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아람 하차투리안(1903~1978),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그중에서도 특히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와 연극 음악 등에서 짧고 인상적인 선율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이 선율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정리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오랜 동료였던 작곡가 레본 아토프미안(1901~1973)이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Five Pieces for Two Violins and Piano)>도 아토프미안이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연극·발레 음악에서 선율들을 선별해 하나의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볍게 듣고 즐기기에 좋고 연주 부담도 크지 않아, 전문 연주자들의 무대뿐만 아니라 교육용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섯 개의 짧은 소품들이 지닌 각각의 개성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나누는 밀도 높은 호흡 안에서 더욱 뚜렷해져 앙상블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첫 번째 곡 ‘프렐류드(Prelude)’는 쇼스타코비치가 영화 <개드플라이(The Gadfly, 1955)>를 위해 작곡한 음악 ‘기타들(Guitars)’의 선율을 기반으로 편곡된 작품이다. 원곡인 ‘기타들’에서는 두 대의 기타가 주선율과 반주를 각각 나누어 연주하지만, 이 곡에서는 두 대의 바이올린이 화성을 이루며 선율을 이끌어가고 피아노가 반주 역할을 담당한다. 원곡에서 기타의 청아하고 여린 색채를 느낄 수 있었다면, ‘프렐류드’에서는 바이올린의 드라마틱하고 짙은 음색을 느낄 수 있다.
[영화 <개드플라이>의 ‘기타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중 ‘프렐류드’ (줄리안 라흘린, 야니네 얀센, 이타마르 골란의 연주)]
두 번째 곡 ‘가보트(Gavotte)’의 원곡은 연극 <인간 희극(The Human Comedy, 1934)>에 쓰였다. 극의 흐름을 보조하는 ‘부수 음악(incidental music)’으로 작곡된 만큼, 가벼운 느낌으로 짧게 연주되는 곡이다. 특히 손가락으로 현을 뜯어 연주하는 ‘피치카토(pizzicato)’ 주법이 사용되어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반면,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안에 속한 ‘가보트’는 두 바이올린이 활로 현을 그어서 연주하도록 편곡되었다. 이 곡에서는 원곡의 경쾌함에 유려한 선율미까지 더해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연극 <인간 희극>의 ‘가보트’]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중 ‘가보트’]
세 번째 곡 ‘엘레지(Elegy)’도 ‘가보트’와 마찬가지로 연극 <인간 희극>의 부수 음악에서 가져와 만든 곡이다. 연극에 삽입된 원곡은 ‘파리의 파노라마(The Panorama of Paris)’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도시의 풍경을 그려내듯이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아토프미안은 이 곡을 재구성하며 ‘슬픔을 노래하는 비가’라는 뜻을 가진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였고, 안단티노(Andantino)로 느리게 연주하도록 편곡했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가깝게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엘레지’는 원곡보다 조금 더 깊어진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연극 <인간 희극>의 ‘파리의 파노라마’]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중 ‘엘레지’]
네 번째 곡 ‘왈츠(Waltz)’의 원곡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1933~1934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사제와 그의 하인 발다 이야기(The Tale of the Priest and His Servant Balda)>의 음악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제작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완성되지 못한 채 제작이 중단되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 공방전 중 스튜디오가 폭격을 당해 대부분의 필름이 소실되어 원곡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
원곡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왈츠’는 이 모음곡의 다섯 개의 소품 중 단연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보인다. 겉으로는 4분의 3박자의 우아하고 밝은 춤곡으로 들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멜랑콜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중 ‘왈츠’]
이 모음곡의 마지막 소품인 ‘폴카(Polka)’는 발레 <맑은 시냇물(The Limpid Stream, 1935)> 제2막의 ‘코다(Coda)’ 선율을 차용해 편곡된 작품이다. 원곡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도록 쓰인 곡이기 때문에 현악기·관악기·타악기가 경쾌한 분위기 안에서 역동적으로 어우러지며 화려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한편,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재구성된 ‘폴카’는 간결해진 색채와 탄력적인 흐름을 보여주며 모음곡의 마지막을 유쾌하게 장식한다.
[발레 <맑은 시냇물> 제2막의 ‘코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중 ‘폴카’]
이 다섯 개의 소품은 애초에 하나의 작품으로 쓰인 음악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장면, 다른 맥락 속에서 탄생한 선율들이 아토프미안의 손을 거쳐 하나의 모음곡으로 엮어진 것이다. 원래의 서사와 배경에서 벗어나게 된 선율들은 새로운 편성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게 되었고, 우리는 이 음악이 새롭게 지니게 된 고유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