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의 공연이 있었다. 리카르도 무티가 음악감독으로서 가졌던 마지막 투어의 일환으로, 프로그램 역시 그의 고국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이탈리아에서(Aus Italien)’는 전통과 경륜이 만들어낸 거대한 고딕 성당의 외벽처럼 견고하고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반면 지난 2월 25일 CSO 공연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차기 음악감독(Music Director Designate)인 클라우스 메켈레가 포디움에 올랐고, 프로그램 역시 그의 조국을 대표하는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Lemminkäinen)’ 모음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였다.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최근 몇 년 사이 메켈레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 주요 악단의 음악감독 자리를 맡게 된 그의 행보를 두고 지나치게 빠른 상승이라는 시선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세대의 지휘자로서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리뷰에서 “이 선택이 얼마나 큰 결실로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It’s still too soon to tell whether that will pay off)”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공연 당일 오전,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오픈 리허설이 열렸다. 평일이었지만 객석은 상당수 청중으로 채워졌고, 특히 젊은 관객들의 수가 눈에 띄었다. CSO는 이미 시카고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한 뒤 뉴욕에 도착한 상태였지만, 이날 포디움에 선 메켈레는 마치 첫 리허설을 시작하듯 세심하게 균형을 점검했다. 10년째 CSO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만계 비올리스트 유밍 첸(Youming Chen)은 “시카고에서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다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첫 곡으로 연주된 ‘영웅의 생애’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삶을 교향시로 투사한 작품이다. 영웅과 적들, 전투, 동반자, 그리고 마지막 안식에 이르는 장면들이 방대한 서사 구조 속에서 펼쳐지며, 곳곳에는 작곡가 자신의 다른 작품들이 인용된다.

이 곡에서 CSO의 강점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영웅의 주제가 처음 등장하는 확신에 찬 도입부부터 저음부와 금관 파트의 밀도 있는 음향이 공간을 장악했다. 적들을 묘사하는 목관의 날카로운 동기와 이어지는 전투 장면에서는 복잡한 폴리포니와 강력한 리듬으로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메켈레는 단순히 압도적인 사운드를 구축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 거대한 에너지를 지탱하는 내부 구조를 다시 조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이 작품의 매력은 단지 압도적인 음향에만 있지 않다. 바이올린 솔로가 서사를 이끄는 ‘영웅의 동반자(Des Helden Gefährtin)’는 슈트라우스의 아내 파울리네를 그렸다. 복잡다단하고 변덕스러운 내면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는 이 대목에서 베테랑 악장 로버트 첸(Robert Chen)은 과장 없는 유연함과 예리한 음색으로 서사의 결을 매끄럽게 다듬어 갔다.

메켈레의 CSO는 한층 유연하고 기민했다. 특히 ‘영웅의 생애’ 중 전투 장면에서는 무대를 가득 채운 100명의 단원이 전장을 향해 돌진하는 전사들처럼 폭발적인 음향을 쏟아냈다. 그 집중된 에너지는 지휘자의 손끝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각 섹션 사이의 호흡을 더욱 긴밀하게 이어갔다. 같은 악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밀도와 소리의 질감은 확연하게 달랐다.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부에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 모음곡은 핀란드와 카렐리야 지역의 국민 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에 기반한 네 개의 교향시로 구성된 작품이다. 메켈레는 북유럽적 분위기에 기대는 대신, 음악의 뼈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 ‘투오넬라의 백조’의 시작과 함께 잉글리시 호른이 고독한 선율을 길게 뻗어나갔고,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서늘하게 내려앉자 죽음의 강 투오넬라의 차가운 공기가 고요히 객석 위로 번졌다.

고딕 양식의 성당을 복원할 때, 어떤 이는 세월이 쌓은 이끼와 그을음조차 전통의 일부라며 보존하려 하고, 어떤 이는 건축가 본래의 설계도를 찾아내 모든 외벽을 투명하게 닦아낸다. 무티의 CSO가 오랜 세월 견고하게 다져진 전통이라는 성벽의 위엄을 보여주었다면, 메켈레의 작업은 그 성벽을 지탱하는 본연의 골조를 투명하게 드러내어 건물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재건에 가까웠다.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26년 2월 25일(수)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사진. © Todd Rosenberg
20년 전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계에 몰고 왔던 충격을 기억하는가. 26세의 청년이 LA 필하모닉의 수장에 오른 사건은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임기 초반부터 말러를 중심으로 한 대형 교향곡의 실황 녹음을 시도했고, 미국 작곡가와 라틴 레퍼토리로 투어를 돌았다. 여기에 YOLA(Youth Orchestra Los Angeles)와 ‘엘 시스테마’를 결합해 ‘LA–교육–사회공헌’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내며 음악계를 넘어선 사회적 파장의 중심에 섰다.

2026년에는 클라우스 메켈레가 존재한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그리고 시카고까지 그를 영입했다. 뉴욕타임스가 언급한 이 거대한 도박의 결과는 아직 안개 속이다. 위대한 전통 위에 선 CSO 앞에서 메켈레는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이제 관심은 그가 이 전통을 어떤 동시대의 언어로 써 내려갈지에 모인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