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의전 그리워서"…김병기 사태에 소환된 '금배지의 맛' [홍민성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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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② '공항 의전'
정치권 공항 의전 논란 반복
정치권 공항 의전 논란 반복
최강욱 전 의원이 지난해 한 유튜브 방송에서 남긴 이 한마디가 최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가족을 둘러싼 '공항 의전' 의혹과 맞물리며 다시 조명받고 있다. 당시 최 전 의원은 "제주도 가족 여행을 가는데도 공항이 시끌시끌해지며 의전이 나오는 걸 보며 '아, 국회의원이 이런 게 있었구나'를 처음 느끼신 것"이라며 공항에서 누리는 '금배지의 맛'의 중독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 "의원님들은 할 게 없어요"…줄 설 필요 없는 '프리패스'
국회의원이 제공받는 공항 의전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촘촘하다. 국토교통부령, 한국공항공사 귀빈실 운영예규 등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예우 대상이다. 귀빈실은 전국 15개 공항 중 13개 공항(원주·군산 제외)에 47개가 있으며, 매년 20억원 이상의 예산이 운영에 쓰이는 것으로 전해진다.잘 알려져 있는 특권으로는 귀빈실뿐만 아니라 '귀빈 주차장', '전용 통로' 등이 있다. 의원실 얘기를 들어보면 단체가 아닌 개인 단위로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 보좌진이 미리 공항 귀빈실 측에 사용 신청서를 작성해 낸다고 한다. 이때 차량 번호 등을 기입하는데, 일반 차량은 주차 자리를 찾느라 공항 주변을 배회할 때, 국회의원이 탄 차량은 여객터미널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된 전용 주차 구역에 멈춰 선다. 국회의원은 일반 승객들이 거쳐야 하는 긴 체크인 카운터 대신 의전실 직원(의전 요원)의 안내를 받아 전용 귀빈실로 향한다.
진짜 '특권의 맛'은 출입국 수속 과정에 있다. 국회의원은 일반 승객과 섞이지 않고 의전 요원 등에게 관련 절차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 출국 심사, 보안 검색 때도 별도 통로를 이용하므로 휴가철 검색대 앞에 수백 미터 늘어선 줄도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공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출국 심사, 보안 검색 등 자기 몸으로 직접 해야 하는 게 아니면 할 게 없다"고 한다. 귀빈실은 10여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화장실도 딸려 있다고 한다.
◇ 특권의 민낯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대
2023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 김포공항 귀빈실을 이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귀빈실은 공무 수행 중에만 이용 가능하고, 공무상이라도 신청자의 부모는 이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당시 용 의원은 "신청서 양식대로 공무 외 사용이라고 명시해 신청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참 송구하고 민망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2018년에는 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공항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당시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행 항공기에 탑승하면서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시해달라는 공항 직원의 요청을 받았다. 김 의원이 투명한 여권 케이스에 들어있는 여권을 제시하자 해당 직원은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말했고, 김 의원은 "지금껏 항상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고) 이 상태로 확인을 받았다"며 거부했다. 김 의원은 직원의 계속된 요청에 "내가 국토위 국회의원인데 그런 규정이 어디 있느냐"고 언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입국장에서 수행원에게 캐리어를 밀어 던진 이른바 '노 룩 패스' 논란은, 정치인들에게 공항이 얼마나 '몸에 밴 의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공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 "한 번 맛보면 못 잊나 봐"…특권 폐지는 '공염불'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권도 이를 의식해 선거철만 되면 특권 폐지를 외치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가장 최근에는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2024년 총선 직후 워크숍에서 '공항 의전실 이용하지 않기' 등을 다짐하는 결의안을 냈다. 2014년에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정치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공항 귀빈실 이용을 금지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었다.하지만 정작 국회의원 등의 공항 귀빈실 이용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게 하고자,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직전 관련 규칙을 부랴부랴 개정한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해외 출장이 잦은 30대 한모씨는 "국회의원을 위한 의전은 원활한 공무 수행을 위해 국민이 특별히 승인해준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전직 의원 보좌진은 "대부분이 '황제 의전'을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번에 불거진 김 원내대표 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대다수 의원이 공항이나 항공사를 통해 의전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항 수속을 빠르게 마치는 등의 편의는 일부 유지될 수 있으나, 가족이나 동행자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히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고 강조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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