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종전안 압박에도 '20개 조항' 수정안 전달…NYT "트럼프 저지 시도" 돈바스 미점령 영토 고수·법으로 안전보장 등 요구…15일 유럽 정상 회의 美윗코프·쿠슈너 주말 베를린행…젤렌스키·유럽 관계자들과 협의 예정
미국이 러시아에 유리한 28개조 종전안을 제시해 유럽에 충격파를 일으킨 이후 우크라이나는 20개 조항의 역제안을 보내 '레드라인'을 넘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를 차단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12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0일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보낸 수정안과 맞물린 여러 당국자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수정안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제시했던 종전안 중에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선을 넘는' 요구를 삭제한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역제안에서 앞으로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보장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우크라이나가 가입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러시아 측의 요구를 반영한 미국의 제안 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이는 나토가 천명해 온 가입신청 개방 정책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아울러 현재 통제하고 있는 자국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도 포함했다.
NYT는 이런 내용을 유럽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의 설명, 그리고 역제안 문건을 봤거나 보고 받은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역제안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며칠간 런던, 브뤼셀, 로마 등에서 유럽 지도자들과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대화를 하는 등 치열한 외교적 노력 후에 마련됐다고 NYT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역제안을 워싱턴으로 보낸 시점은 10일 밤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와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이번 주말에 베를린으로 가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윗코프는 아울러 14일과 15일에는 우크라이나전 문제를 담당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의 관계자들과도 만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방안 논의는 15일로 예정된 유럽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이 회의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11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 논의에 충분한 진전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만 15일 유럽 지도자들의 회의에 미국 측 인사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측이 미국에 제시한 역제안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점령당한 영토에 더해 추가로 영토를 포기하고 평화를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달 중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요구를 저지하려는 시도라고 NYT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지도자들은 미국 측 종전안이 우크라이나에 굴욕을 안기는 것일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미국의 28개조 제안을 우크라이나 측이 수용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측 역제안을 러시아가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주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측 제안은 문건 3건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한 건은 폐허가 된 지역을 재건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하는 내용이며, 다른 한 건은 우크라이나가 다시 공격받을 경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측 역제안 중에서 안전보장 항목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생기려면 결국은 미국 의회에 제출돼야만 할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날 소셜미디어 글에서 평화를 보장하려면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보다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할 경우 파트너 국가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구체적 해답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11일 늦은 밤에 올린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중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지역에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주둔하지 않는 자유경제구역을 만들자'는 취지의 미국 측 제안에 대해 회의적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미국 측의 '돈바스 지역 내 자유경제구역' 제안에 러시아군이 돈바스 전역에서 철수토록 요구하는 내용은 없다면서 "만약 우리에게 타협하라고 얘기한다면, 공정한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르면 영토 할양은 국민 투표를 통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내놓은 돈바스 지역 내 자유경제구역 제안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별다른 설명 없이 12일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NYT는 지난달 워싱턴DC 소재 미국 중앙정보국(FBI) 본부 청사에서 캐시 파텔 FBI 국장과 루스텝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 올렉산드르 포클라드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부국장이 만났으며, 이 회동이 다른 정보기관들과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회동이 우메로우 등이 연루된 부패 의혹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