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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프리즘] 우리 산업에도 거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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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론은 강력한 혁신 출현의 방증
    기술·인재 결집 기회로 활용해야

    강동균 편집국 부국장
    [이슈프리즘] 우리 산업에도 거품이 필요하다
    세계 최초의 투자 버블(거품)은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시장에서 등장했지만, 기술 분야 거품은 19세기 영국 철도산업에서 처음 생겨났다. 1825년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세계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데 이어 1829년 리버풀-맨체스터에 첫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도 구간이 열렸다. 승객과 화물을 압도적 효율로 실어 나르는 철도에 영국인들은 열광했다. 1840년대 초 중산층을 중심으로 철도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노선 착공’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하루에 30% 치솟았다. 단 1년 만에 1000개가 넘는 철도회사가 세워졌고, 철도 건설 계획서만으로 주식시장에서 거액을 빨아들인 기업이 수백 곳에 달했다. 당시 영국 언론이 이를 ‘철도 광기’(railway mania)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광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1846년을 기점으로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 수익성 없는 노선과 무리한 확장, 부실 경영이 드러나며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철도 회사의 파산이 속출했다. 결국 거품은 꺼졌지만 이미 깔린 1만㎞의 철도 노선은 영국 산업혁명의 주축이 됐다.

    거품은 흔히 실체 없는 기대, 과도한 투기, 결국 터지고 마는 헛된 환상 등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산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품이 거품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버블은 혁신을 촉진하고 산업의 지평을 넓혔다. 거품이 터진 자리에 기술은 남아 우리 삶과 세상을 바꿔왔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기, 수익모델조차 분명하지 않은 기업들이 ‘인터넷’이란 단어만 붙으면 막대한 투자를 끌어모았다. 주가는 현실과 동떨어지게 치솟았고, 날마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했다. 2002년 끝내 거품은 터졌고, 수많은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기 깔린 광통신망과 서버 인프라, 그리고 인터넷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소비자 문화는 이후 디지털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스트리밍 산업은 그때의 과열된 투자 유산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당시의 투자는 비이성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래 산업의 ‘도로와 다리’를 먼저 놓는 역할을 했다. 거품은 자본뿐 아니라 인재도 움직인다. 한 산업이 주목받고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하면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그곳으로 몰려든다. 높은 보상과 성장의 기대가 인재 이동을 촉발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의 속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새로운 산업과 기술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거품론이 불거지곤 했다. 1920년대 자동차와 라디오, 1950년대 원자력, 1980년대 PC,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까지 모두 과열, 붕괴, 정착의 과정을 거쳤다. 최근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AI) 거품 논쟁도 비슷한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특정 산업에서 거품론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기술이 출현했다는 방증이다. 기술 혁신이 미약한 국가에선 아예 이런 논쟁이 생기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닷컴 버블 이후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거품 조짐을 찾아볼 수 없다. 세계를 뒤흔들 만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CB인사이트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는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올해 10월 기준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13개로 미국 717개, 중국 151개에 크게 못 미쳤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버블은 나쁘지 않다. 산업 버블은 긍정적인 버블”이라고 했다. 향후 우리도 AI, 휴머노이드, 모빌리티,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 거품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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