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12월은 처음"…사라진 연말 특수에 자영업자 '울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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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수 실종…을지로·영등포 '텅텅'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자영업계 비명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자영업계 비명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25년 넘게 횟집을 운영해온 70대 사장 김 모씨는 11일 기자를 만나 올해 연말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연말이라고 해도 기대가 전혀 안 된다.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다"며 "저녁 회식 예약은 거의 전멸 수준이고, 점심에 종종 단체 손님이 오지만 12시 30분 전후 잠깐 시끄럽다가 그 이후엔 완전히 조용해진다"고 했다. 이어 "직원 인건비, 가게 유지비가 계속 오르는 상황이라 사실상 버티고 있는 것뿐"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른 을지로 고깃집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는 40대 직원 이 모씨도 "매출이 작년보다 50% 이상 줄었다"며 "코로나 이후 줄어들던 손님이 잠깐 회복되는가 싶더니 다시 사라졌다. 일을 시작한 후 지금이 가장 한가하다. 연말 특수는 이제 옛말이고, 몇몇 유명한 가게를 제외하면 다들 곡소리 난다"고 토로했다.
최근 입소문 난 몇몇 맛집을 제외하면, 큰 매장임에도 한두 테이블만 손님이 자리한 곳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60대 임 모씨는 "연말이라고 하지만 단체 예약이나 회식 예약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작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 같다"며 "아마 주변 몇몇 대형 술집을 제외하면 다들 똑같이 어려울 것이다. 정말 힘든 연말"이라고 말했다.
한 삼겹살집 직원 이 모씨도 "작년에는 여의도에서 큰 이슈도 있고 해서 사람이 많았는데, 올해 분위기는 정말 심상치 않다"며 "평일 회식, 단체 손님은 거의 없고 그나마 주말 매출로 버티는 수준"이라고 했다.
같은 골목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올해는 예약도, 매출도 체감상 20~30% 정도 줄었다"며 "원래 이 골목이 사람들로 붐비고 택시도 끊임없이 오가던 곳인데, 연말이고 평일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이 확 줄었다"고 전했다.
◇올해 서울 외식 매출, 688억 증발
또 다른 자영업자들도 "작년 12월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이렇게 조용한 12월은 처음", "주위 사장님들이 다들 반토막, 반의반 토막이라고 한다. 몇 명은 아예 장사를 접었다", "지난주 인천 번화가에 갔는데, 가게 전체가 썰렁했다", "2차 술집, 프랜차이즈도 다 안 된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심각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외식업 불황이 특정 지역이나 업종을 떠나 전반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통계도 이와 같은 하소연을 뒷받침한다. 서울 주요 상권 외식업 매출은 올해 들어 확연한 감소세를 보인다.
서울시와 민간 결제 데이터를 종합하면 올해 2분기 서울 외식업 매출은 전년 대비 약 688억원 줄며 코로나 회복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외식업체 수도 2023년 16만1242곳에서 올해 15만7108곳으로 감소했다.
전국적으로도 흐름은 비슷하다. 지난해 음식 서비스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 감소했고, 한식·일반 음식점 업종 전체 매출도 평균 3.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 부담은 오히려 증가했다. 가공식품·식자재 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4% 이상 상승해 원가 부담을 키웠고,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까지 겹치며 자영업자 수익성은 크게 떨어졌다.
이 영향으로 최근 1년 사이 전국 자영업자 수는 약 20만 명 줄었고, 폐업 신고를 한 소상공인은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서며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식업 매출 감소, 원가 상승, 자영업자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을지로 상인들이 말하는 'IMF·코로나보다 더한 체감 경기'는 이미 수치로도 확인되는 상황이다.
◇"불황보다 분위기 침체가 더 큰 문제"…소비 심리 흔들려
실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회식 인식 및 형태 변화' 조사(2023년)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할 수 있다.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회식이 저녁 술자리 중심에서 점심 식사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응답은 57.5%였으며, 직장인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선택한 회식 방식 역시 '맛있는 점심 회식'이 78.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연말 설문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회식 형태는 '주류가 없는 점심 회식'(40.2%)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올해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저녁 손님 급감' 현상과 정확히 맞물린다. 코로나 이후 정착한 점심·논알콜 회식 트렌드가 외식업 수요의 시간대뿐 아니라 형태 자체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를 거치며 '연말에 굳이 송년회나 회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과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연말·연시에 소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음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이를 즐기려는 분위기 자체가 크게 줄었다. 경제가 불황이라 해도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 보니 소비 위축이 더 확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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