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북벌 실패와 노란봉투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 CHO Insight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제갈량의 북벌 시도는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선의 또는 담론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라는 것 또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충격이 덜한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덜컥 원청을 교섭자리에 앉히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는 하루아침에 노동법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어디까지가 사용자이고 교섭자리에서 어디까지 논의해야 하는지 알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북벌의 필수 조건은 촉나라와 오나라의 동맹으로 위나라를 동시에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권은 촉나라가 위나라를 무너뜨리면 오나라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인 협공을 하지 않았고, 위나라는 서쪽 전선 방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노란봉투법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이윤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되려면 원청의 이윤이 하청 또는 하청 근로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야 하는데, 원청 기업으로서는 정해진 한도 안에서 자원을 재분배할 수밖에 없고 이는 원청 근로자 또는 원청 노조에 돌아가는 몫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일정 부분 원청 노조의 양보 없이는 노란봉투법의 작동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양보가 가능한지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꽤 오랜기간 각계각층에서 노란봉투법에 관한 입장표명을 하여 왔지만, 중요한 이해관계자일 수밖에 없는 원청 노조 측에서 이를 환영한다고 한다거나 사업장 적용을 위해 협력한다고 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북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사마의를 중심으로 한 위나라의 적절한 대응일 것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여인의 옷을 보내는 등 각종 도발을 해와도 평정심을 지키면서 개활지에서의 결전을 피하고 요새를 지키며 시간을 끄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수세적 방어와 소모전을 계속하여 촉군을 지치게 하였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고 원청에 대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빗발치면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교섭이 활발이 이루어지고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으로 이어질까. 일단 교섭테이블에서 마주 앉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가진 전문가라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실질적 지배력’의 개념에다가, “그 범위에 있어서 사용자”라고 하여 “범위”이 의미 또한 모호한 상황에서 원청의 단체교섭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알기가 어렵고 법원을 통한 분쟁에서야 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청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단 교섭테이블에 앉아 단체교섭을 하다가 나중에 실질적 지배력이 없는 것 같아서 단체교섭을 거부하게 되면 처음부터 단체교섭을 하지 않는 것보다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편, 고용노동부 및 여러 전문가들이 “그 범위에 있어서 사용자” 부분에서 “범위”를 개별 교섭안건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데, 그러한 해석이 맞는지도 매우 의문이다. 교섭안건이라는 것은 무궁무진할 수 있고,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수시로 변경·추가될 수 있는데, 등장하는 교섭안건별로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분쟁을 부채질하는 하는 해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설마 하청 노조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안건만 엄선하여 단체교섭 요구를 하고, 원청은 이에 응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 원청으로서도 이 부분은 실질적 지배력이 있을 것 같고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 리스크가 있으니 일단 교섭에 응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또한 큰 오판일 수 있다.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이해의 일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 엄선된 안건에 한하여 단체교섭 요구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고, 그렇다면 교섭의무 여부가 다투어지는 상황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 지배력이 없는 안건에 대하여는 교섭에 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는 순간 부당노동행위 리스크는 피하기 어려운 길이고 결국 분쟁이다.
여기에 더하여 입법예고된 시행령에 따르면 교섭단위분리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교섭단위에 대한 시각차가 있으면 이 또한 분쟁이고, 이때 시각차는 원청과 하청 노조뿐만 아니라 하청 노조들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갈래의 분쟁과 혼란이 불가피하며, 교섭단위분리신청이 제기되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일단 중단된다는 점에서 단체교섭을 개시하기 전부터 소모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길을 되돌릴 수 없다면 잘 흐르게 해야 하는데, 와룡 제갈공명이 부활해도 그 방법을 찾기 어려워 보이니 걱정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