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아파트 기준이 25억원으로 재편됩니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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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주택가격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부는 고가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으면 주택시장 전체가 안정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에는 가격이 높은 아파트가 많이 오르기 때문에 고가 주택시장 안정이 전체 시장 안정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주거 선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서울 외곽의 아파트도 가격이 오르지 않아 안정적인 주택시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정부의 기대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주택시장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택가액을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금액을 규제한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12월16일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입니다. 당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을 해주지 않는 강수를 뒀습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대출도 중단했습니다. 이 조치는 발표 다음날인 12월17일부터 적용했습니다. 강력한 규제에 서울의 주택시장은 5~6개월 동안 하락했지만 이후 큰 폭의 반등을 이뤄냅니다. 문제는 반등할 때 정부에서 주택가격 상한 기준으로 설정한 15억원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마포의 대표 아파트인 '마포래미안푸르지오'(마래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12월 16일 대책 발표 이후 14억원대까지 하락했지만, 2020년 5월 16억원으로 복귀했고 그해 하반기에는 18억 2000만원까지 뛰었습니다. 즉, 15억이라는 초고가 주택의 기준으로 인해 이 가격을 밑돌던 아파트도 15억 이상으로 거래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래푸 전용 84㎡는 올해 10월15일 부동산안정화대책이 발표된 이후 26억원에 계약이 체결되면서 25억원 이상이라는 초고가주택 기준을 넘어버렸습니다. 이전 거래가격이 24억8000만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설정한 초고가 주택 기준에 맞춰 거래 가격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같은 사례는 동작구 흑석동에서도 나타납니다. '흑석한강센트레빌1차'의 경우 2020년 7월 15억3000만원에 거래되면서 13억원대 수준이던 기존 실거래가를 뛰어넘었고 연말에는 16억3000만원까지 거래됩니다. 2025년에도 10월 18일 24억5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초고가 주택 기준에 근접한 가격을 보여줍니다. 25억원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정부가 대출규제를 실행하기 위해 제시한 15억원, 25억원이라는 가격이 기준점이 돼 주택 수요자들이 현재의 아파트 가격이 낮다고 평가해 정부 기준에 맞게 가격을 올리게 됩니다. 이런 효과는 주거 선호 지역의 아파트에서 두드러지며 주택공급이 줄어들었을 때는 더욱 심화합니다.
기준점 효과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기준점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많이 하는데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전문가들조차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신이 그 기준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더욱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 보이는 것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주택가액을 기준으로 하는 규제를 도입할 때는 기준점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영향을 꼼꼼히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큰 문제는 고가주택의 하한 기준입니다. 고가주택의 상한이 25억원이라면 하한은 15억원이 될 겁니다. 이 하한 기준금액 또한 주택수요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15억원에 미치지 못한 가격대의 아파트라도 15억원을 향해 계속 가격을 높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파트 가격이 15억원을 넘으면 대출이 줄어든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출이 금지됐을 때도 가격이 오른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부는 고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을 막고 싶을 겁니다. 가격의 상한을 설정하면 자연스럽게 시장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택의 가격을 설정하는 직접규제는 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직접규제가 정반대의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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