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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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가족으로 만난 디아스포라의 초상
곱창집 연기와 뻥튀기 냄새, 日간사이 사투리...
한 가족의 일상 속에 새겨진 재일동포의 상흔
흔들리는 삶을 기록한 정의신 연출의 집요한 응시
용길이네 가족으로 만난 디아스포라의 초상
곱창집 연기와 뻥튀기 냄새, 日간사이 사투리...
한 가족의 일상 속에 새겨진 재일동포의 상흔
흔들리는 삶을 기록한 정의신 연출의 집요한 응시
용길은 단순히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아니라 역사적 격랑을 견딘 존재다. 그는 전쟁과 분단, 고향 제주도가 초토화된 4.3사건 등 상흔 아래 돌아갈 마을이 없어진 삶을 살았다. 어쩔 수 없이 일본 땅에 남게 된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을 떠맡은 인물이다. 역사가 그에게 남긴 결과물이 그의 삶을 구성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무대 위 포차 ‘야끼니쿠 드래곤’은 그에게 삶의 보루이자 상징적 공간이다. 고기를 굽는 숯불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온도이고 생존의 냄새이며 가족의 분투를 담는 연무다. 곱창가게 또한 용길이 완전히 일본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안식처이면서도 영구적인 정착지는 아닌 애매한 경계의 공간으로.
이 가족의 해체는 재일동포 디아스포라의 전형적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용길 세대는 떠날 수 없는 운명에 붙잡혀 있었고 자녀 세대는 탈출을 모색하지만 그 탈출은 결코 완전한 귀속이나 안착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직감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고향과 타향 사이, 소속과 소외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로 남는다.
무대의 지리적 배경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연출가 자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연극이 간사이 지방, 특히 오사카를 중심으로 삼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의신 연출은 자신의 출신지이기도 한 이 지역을 무대로 삼아, 인물들의 언어와 삶의 방식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그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재일한국인만의 역사나 감춰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끼니꾸 드래곤을 만들었다"고 했다.
연출가는 공간 활용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무대에는 불판이 자리 잡고 가족이 모이거나 갈등할 때 그 주위를 배우들이 오가며 동선을 만든다. 가족 간 화해의 순간에는 인물들이 불판 주변에 모여 몸을 가까이하고, 갈등할 때는 무대 가장자리에 흩어지게 배치해 관계의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연출은 이런 동선 설계로 인물 간의 정서적 거리와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토키오를 연기한 키타노 히데키의 연기는 심금을 울린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좁히며 등장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거나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만 내뱉는다. 토키오가 함석 지붕에 올라 독백을 하며 "이 동네가 정말로 싫었다"고 시작하던 연극은, 죽은 토키오가 철거 직전의 곱창집을 내려다보며 "사실은 이 동네를 사랑했다"고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의신에게 이 연극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기록의 행위이기도 하다. “재일교포들의 삶이 사라지기 전에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이 무대가 과거의 회고를 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증언한다는 메시지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에 다시 돌아온 이 연극은 공유된 기억과 상처를 되새기게 하는 연대의 장이다. 정의신 연출이 “내가 쓴 작품이 상상을 뛰어넘어 멀리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고 말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단지 과거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삶과 마음에 닿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야끼니쿠 드래곤'은 한 가족사의 그 너머로, 경계 위에 선 사람들의 보편적 삶의 초상이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끊임없이 소속감을 문책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연극은 말한다.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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