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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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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가족으로 만난 디아스포라의 초상
    곱창집 연기와 뻥튀기 냄새, 日간사이 사투리...
    한 가족의 일상 속에 새겨진 재일동포의 상흔
    흔들리는 삶을 기록한 정의신 연출의 집요한 응시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한일수교 60주년을 기념해 14년만에 서울에 재연되는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이하 야끼니꾸 드래곤).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매우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1970년대 일본 간사이(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서쪽 지방)를 배경으로 곱창집을 운영하는 재일한국인 가장 김용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귀향할 수 없는 삶과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운명을 그렸다.

    용길은 단순히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아니라 역사적 격랑을 견딘 존재다. 그는 전쟁과 분단, 고향 제주도가 초토화된 4.3사건 등 상흔 아래 돌아갈 마을이 없어진 삶을 살았다. 어쩔 수 없이 일본 땅에 남게 된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을 떠맡은 인물이다. 역사가 그에게 남긴 결과물이 그의 삶을 구성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무대 위 포차 ‘야끼니쿠 드래곤’은 그에게 삶의 보루이자 상징적 공간이다. 고기를 굽는 숯불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온도이고 생존의 냄새이며 가족의 분투를 담는 연무다. 곱창가게 또한 용길이 완전히 일본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안식처이면서도 영구적인 정착지는 아닌 애매한 경계의 공간으로.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경계의 불안은 그의 자녀들에게 더욱 선명하게 전이된다. 중학생이던 막내아들 토키오는 사립학교에서 지속적인 이지메를 당하고 실어증에 걸린 채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다. 그의 죽음은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재일동포 2세들이 겪은 구조적 차별과 고립의 상징이다. 이후 몇번의 계절이 바뀌고 장녀 시즈카는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향하고, 차녀 리카는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가게 된다. 셋째딸 미카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 남지만 그녀가 생활하게 될 시댁도 중심이 아닌 타자의 영역이다. 세 자매의 삶은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그 어디에서도 완전한 안정이나 환영받는 정체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가족의 해체는 재일동포 디아스포라의 전형적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용길 세대는 떠날 수 없는 운명에 붙잡혀 있었고 자녀 세대는 탈출을 모색하지만 그 탈출은 결코 완전한 귀속이나 안착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직감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고향과 타향 사이, 소속과 소외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로 남는다.

    무대의 지리적 배경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연출가 자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연극이 간사이 지방, 특히 오사카를 중심으로 삼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의신 연출은 자신의 출신지이기도 한 이 지역을 무대로 삼아, 인물들의 언어와 삶의 방식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그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재일한국인만의 역사나 감춰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끼니꾸 드래곤을 만들었다"고 했다.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극은 후각적 연출을 과감하게 활용해 관객의 감각을 극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공연 시작 20분 전 프리쇼에서는 배우와 악사들이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연주하고, 무대에서 곱창을 굽는 소리와 함께 실제 곱창 굽는 냄새가 객석까지 퍼진다. 정의신은 이 장면에 대해 “어렸을 적 어머니가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손님들을 대접하는 모습이 기억난다”며 “정성껏 준비한 장면과 음악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설명했다. 프리쇼뿐 아니라 장면 사이사이 뻥튀기 냄새가 퍼지는 연출은 나이든 관객이 가난했던 한국의 과거를 후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이 냄새는 소박한 삶의 기억과 향수를 끌어내는 정서적 장치다. 배우들이 걸쭉하게 구사하는 간사이 사투리(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의 구성진 사투리와 유사하다)와 어눌한 한국어도 혼재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연출가는 공간 활용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무대에는 불판이 자리 잡고 가족이 모이거나 갈등할 때 그 주위를 배우들이 오가며 동선을 만든다. 가족 간 화해의 순간에는 인물들이 불판 주변에 모여 몸을 가까이하고, 갈등할 때는 무대 가장자리에 흩어지게 배치해 관계의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연출은 이런 동선 설계로 인물 간의 정서적 거리와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배우 이영석은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은 용길이를 연기했다. 살짝 숨을 고르는 듯한 호흡으로 말보다 행동으로 무게를 실은 아버지의 내면을 전달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가 연극 말미,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이런 날이라면 내일을 믿을 수 있지"라고 대사를 읊으며 아내 영순(배우 고수희)과 하늘을 쳐다볼 때 객석 곳곳에서는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토키오를 연기한 키타노 히데키의 연기는 심금을 울린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좁히며 등장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거나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만 내뱉는다. 토키오가 함석 지붕에 올라 독백을 하며 "이 동네가 정말로 싫었다"고 시작하던 연극은, 죽은 토키오가 철거 직전의 곱창집을 내려다보며 "사실은 이 동네를 사랑했다"고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계인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다…14년 만에 돌아온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이 연극이 특별한 이유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신 연출은 “인생에는 희극과 비극이라는 두 개의 레일이 펼쳐져 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뒤집히며 가는 것이 곧 인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아가야만 한다. 그럴 때 떠오르는 단어가 ‘희망’”이라며 “작가라면 결국 희망에 관해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의신에게 이 연극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기록의 행위이기도 하다. “재일교포들의 삶이 사라지기 전에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이 무대가 과거의 회고를 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증언한다는 메시지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에 다시 돌아온 이 연극은 공유된 기억과 상처를 되새기게 하는 연대의 장이다. 정의신 연출이 “내가 쓴 작품이 상상을 뛰어넘어 멀리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고 말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단지 과거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삶과 마음에 닿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야끼니쿠 드래곤'은 한 가족사의 그 너머로, 경계 위에 선 사람들의 보편적 삶의 초상이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끊임없이 소속감을 문책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연극은 말한다.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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