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침대에 저 남자 누구야?"…'AI 낯선사람' 몰카 확산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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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만 '좋아요' 기록한 AI 낯선사람 장난
한국서 가족·직장까지 번진 'AI 몰카'
"모방 심리 자극, 놀이로 소비해선 안 돼"
한국서 가족·직장까지 번진 'AI 몰카'
"모방 심리 자극, 놀이로 소비해선 안 돼"
집 사진 속에 낯선 사람을 AI로 합성해 가족이나 연인을 속이는 허위 침입 연출이 유행하며, 미국·영국에서 시작된 이 챌린지가 한국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위 침입 사진을 본 가족이나 연인이 실제로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공공안전과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신종 AI 장난 문화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수구 고치러 왔다던 아저씨, 알고 보니 AI 합성"
영상에서 그는 "하수구가 터져서 아저씨가 오셨다"며 평소 자기 집 부엌 사진을 배경으로 AI로 생성한 낯선 남성을 합성해 남자친구에게 전송했다.
그가 만든 이미지는 한 장이 아니었다. 낯선 남성이 소파에 앉아 있는 장면, 화장실에서 상의를 벗고 면도하는 장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까지 마치 실제로 집에 머무는 사람처럼 시나리오를 짜서 보냈다.
남자친구는 처음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누구야?", "집에 있어?"라며 당황했고, 이어 "진짜 사람 아니야?"라며 다급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곧 AI로 만든 몰래카메라임을 알아채고, 영상은 웃음 섞인 채 마무리됐다.
이 영상은 게시 하루 만에 조회 수 수만 회를 넘겼고, 댓글에는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앱 이름 좀 알려주세요" 등 제작 방법을 묻는 반응이 이어졌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집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아내에게, 회식 중이던 남편이 "지금 당장 집에 갈게"라며 놀라는 장면이 담겼다.
심지어 회사 대표를 속이는 버전까지 등장했다. "회사에 어떤 여자가 찾아왔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AI 합성 사진을 보내 대표를 당황하게 만든 뒤, "장난이에요"라고 밝히는 식이다.
네이버 블로그나 커뮤니티에는 "낯선 사람 우리 집에 들어왔다는 AI 이미지 만드는 법"이라는 튜토리얼 게시물까지 올라와 있다.
◇ 해외선 89만 '좋아요'…한국까지 번진 틱톡발 'AI 낯선사람 챌린지'
이 영상 트렌드의 출발지는 해외다. 팔로어 3000만 명을 보유한 한 유명 틱톡커가 'AI로 집에 노숙자가 들어왔다'는 장난 영상을 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17일 기준 해당 영상은 좋아요 89만5000개, 공유 18만4000회를 기록하며 전 세계로 확산했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도 비슷한 영상이 쏟아졌고, 한국인 사용자들 역시 같은 포맷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단순히 AI 이미지 생성에 그치지 않고, '가족·연인·직장 상사'를 속이는 스토리형 몰카 콘텐츠로 진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틱톡에는 "집에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며 AI로 만든 사진을 전송하고, 놀란 가족이나 연인의 반응을 보여주는 영상은 수백 건에 달한다
◇ "웃기긴커녕 위험하다"…美·英 경찰, 공식 경고
경찰은 "장난이라지만 이 '장난'은 전혀 재밌지 않다"며 "이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 공포심이 생기고, 경찰 자원이 낭비돼 실제로 긴급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해당 사진을 보고 실제 사건으로 오인한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 '침입자'를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는 이달 초 "한 부모가 '딸이 집에 혼자 있는데 낯선 남성이 침입했다'고 신고했지만, 이는 딸의 장난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영국 경찰은 이후 공식 경고문을 내고 "허위 신고가 실제 범죄 대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친구나 가족이 이런 사진을 보낸다면 신고하기 전에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며 "특히 어린 자녀들이 이런 장난에 동참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을 당부했다.
경찰은 자사 SNS에 'AI 노숙자 챌린지' 예시 이미지를 올리며 "이건 단순한 밈(meme)이 아니라, 실제 사회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실제 경찰 신고로 이어진 사례가 등장했다. 한 틱톡커는 "집에 노숙자가 들어와 밥을 먹고 집을 뒤적거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AI로 생성한 사진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놀란 어머니는 실제 상황으로 믿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 후 통화 장면이 그대로 틱톡에 게시됐다.
단순 장난이 '허위신고'로 번진 첫 국내 사례다.
◇"허위신고 아니어도 경찰은 출동…공공자원 낭비 심각"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걸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허위신고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하겠지만, 상대방은 AI로 합성된 장면을 만들어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꾸민 것"이라며 "경찰은 일단 '침입'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출동해야 하는 구조상, 실제 긴급 사건 대응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보통 2인 1조로 한 대의 경찰차가 출동하는데, 파출소 인원이 10여 명 내외인 곳도 많아 이런 허위신고가 늘어나면 실제 긴급상황 대응 인력 유출이 심각해진다"며 "AI 장난으로 소방서·경찰서 허위신고가 늘어나면 사회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콘텐츠 제작자들도 단순 조회수보다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AI 합성 사진이라 해도 상대방은 순간적으로 공포에 휩싸여 진위 판단이 어렵다"며 "결국 경찰이나 소방에 긴급 신고를 하게 되고, 이는 자칫 공무집행방해나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영상을 SNS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모방 심리를 자극해 더 자극적이고 위험한 콘텐츠를 양산한다"며 "AI 챌린지를 전시하거나 재현하는 행위는 명백히 사회적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놀이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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