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충남 아산캠퍼스는 전국 곳곳에 있는 이 회사 사업장 가운데 요즘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으로 꼽힌다. 이 캠퍼스의 주력 생산 품목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같은 인공지능(AI)용 메모리여서다. 미국 빅테크 등의 AI 반도체 주문이 쏟아져 들어온 덕분에 삼성전자의 올 3분기 HBM·SSD 합산 수출액은 역대 최고인 85억2055만달러(약 12조200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시장 평균 추정치를 10% 이상 웃돈 ‘깜짝 실적’을 낸 배경이다.
◇ HBM3E 개선품 판매 확대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올 3분기 8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됐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시스템LSI사업부(1조원 안팎 영업적자)를 합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전체 영업이익은 7조원 정도로 알려졌다.
메모리사업부가 선전한 배경엔 HBM이 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부터 미국 AI 가속기 업체 AMD에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지난달엔 엔비디아의 HBM3E 12단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
HBM사업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지난달 삼성전자 HBM 생산 기지가 있는 아산의 복합구조칩집적회로(HBM 포함) 수출액은 31억4760만달러(약 4조5000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8월 수출액(18억7509만달러) 대비 67.9% 늘었다. AI 서버용 데이터 저장장치인 SSD도 효자로 부상했다. 한경에이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SSD 수출(아산 기준)은 18억6612만달러로 올 1분기(14억9178만달러), 2분기(17억7480만달러)에 이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 파운드리 가동률 상승
저전력D램(LPDDR), 그래픽D램(GDDR) 등 최신 범용 D램이 모듈 형태로 AI 서버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삼성전자 실적을 끌어올린 요인이 됐다. AI 투자 트렌드가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한 ‘학습’에서 ‘추론’(서비스)으로 이동하면서 HBM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 최첨단 범용 메모리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최근 엔비디아가 LPDDR5를 활용한 저전력 서버 D램 모듈 SOCAMM2 주문을 시작했고, GDDR7을 활용하는 경량 AI 가속기 출시에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 상반기에 분기마다 2조원 수준의 영업적자를 낸 파운드리도 국내외 고객사를 확보하며 적자 폭을 1조원 안팎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가동률이 올 상반기 60%에서 3분기 77%로 올라갔다”고 분석했다.
◇ “메모리 재고 바닥”
삼성전자 DS부문이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면서 ‘메모리 슈퍼 호황’에 대한 믿음은 더 강해지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선 이번 호황에 대해 “2017~2018년 슈퍼사이클 때보다 상승 기간이 길고 강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시엔 클라우드 투자 붐에 따라 빅테크의 일반 서버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불렀다면 지금은 일반 서버 교체 시기 도래와 AI용 서버 신규 투자, 온디바이스AI 기기 신규 수요가 겹쳤기 때문이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 1분기 D램 평균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10% 오르고 2분기에도 1분기보다 3~8%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투입량이 일반 D램의 3~4배 수준인 HBM 등의 수요가 계속 늘면서 범용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만의 메모리 모듈 전문업체 ADATA의 천리바이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3대 메모리 제조사의 쌀독(재고)이 바닥났다”고 말했다.
파운드리사업이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퀄컴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수주를 위한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맞춤형 AI 가속기 연합인 ‘NV링크 퓨전 에코시스템’에 합류한 것도 호재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엔비디아의 AI용 맞춤형 프로세서 설계 및 제조와 관련해 협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