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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아닌 자의 얼굴로 심연을 더듬는 죠셉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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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이장욱의 청춘이 묻고 그림이 답하다

    캔버스 가득 얼굴을 그려내는 화가
    죠셉 초이(Joseph Choi)
    그림자와 거울 사이

    죠셉 초이(Joseph Choi, b. 1968)의 캔버스는 얼굴로 가득하다. 이 얼굴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오래된 사유의 흔적이자 시각적 탐색의 결과다. 겹쳐지고 분절된 형상은 신화(神話) 속 인물을 떠올리게 하며, 고정된 자아(自我) 개념을 끊임없이 흔든다. 무의식(無意識)의 그림자 속에서 떠오른 형상들이, 거울에 비친 자아와 맞물리며 낯선 장면을 만든다. 초이의 회화는 감각과 무의식,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출현한다. 그의 그림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얼굴 사이의 틈을 보여준다. 그 틈은 자아의 균열이기도 하고 어쩌면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이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Scene in frone of the Lake, Oil & acrylic on Canvas, 190 x 150 cm, 2025. / 필자 제공
    Scene in frone of the Lake, Oil & acrylic on Canvas, 190 x 150 cm, 2025. / 필자 제공
    수많은 ‘나’들의 무대

    초이의 그림에 겹쳐진 얼굴들은 형상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들은 감정의 파편이며, 오래된 기억의 여운이고,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해체되며 다시 조립되는 자아의 잔상이다. 그의 인물들은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타자(他者)와 자아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리적 풍경을 은유한다. 초이의 화면은 하나의 무대처럼 보인다. 그 위에 놓인 인물과 사물, 풍경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향해 수렴한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감정과 기억, 상처와 욕망(慾望)의 그림자로 형상화되며, 뚜렷한 하나의 얼굴이라기보다 서로 겹쳐진 자아의 층으로 남는다. 그는 이 연극의 연출자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그 모든 면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The Scene, Oil & acrylic on Canvas, 200 x 300 cm, 2025. / 필자 제공
    The Scene, Oil & acrylic on Canvas, 200 x 300 cm, 2025. / 필자 제공
    의자 위, 흔들리는 자아

    초이의 그림에는 의자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위에 앉아 있는 인물들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자세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표정은 제 자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자는 전통적으로 위계(位階)와 권위(權威)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누군가가 자리에 앉는다는 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이름을 갖고, 자아를 규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이의 회화에서 의자는 그 모든 확정을 유예한다. 의자에 앉은 존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얼굴은 겹쳐지며, 신체는 분할되고, 시선은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한다. 한 자리를 온전히 점유하지 못한 자들이, 한 몸 안에서 수많은 목소리로 분열된다. 그 위에서 인물은 자신을 응시하고, 망상(妄想)의 파고와 싸우며, 내면의 무대에서 고요한 독백을 이어 간다. 의자는 마치 무대이자 경계처럼, 현실과 무의식 사이의 틈에 놓인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에서 의자가 감금(監禁)과 고통을 암시하는 전기의자였다면, 초이의 의자는 정체 모를 페르소나(persona)들이 단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합하는 불안의 장(場)이다. 그것은 자아가 분열되고 재구성되는 현장이자, 존재의 불안이 드러나는 무대다.
    Figure holding a piece, Oil & acrylic on Canvas,190 x 150 cm, 2025. / 필자 제공
    Figure holding a piece, Oil & acrylic on Canvas,190 x 150 cm, 2025. / 필자 제공
    결핍에서 피어난 꽃

    모든 시작은 빈자리였다. 부재한 아버지, 방임된 유년, 그리고 질서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군복의 규율(規律). 죠셉 초이의 회화는 그 기억 속에서 길을 잃는 대신, 한 번도 가진 적 없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림은 어떤 증명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낸 장면을 되짚는, 말 없는 반추(反芻)의 시간이자 내면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였다. 파리(Paris)로 떠난 그는 언어를 익히기에 앞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낯선 세계의 이방인으로서 그는 강해지기보다 느려졌으며, 단단해지기보다 멀어졌다. 그 느림과 거리감은 그만의 시선을 낳았고, 그것은 자연스레 그의 화면 속에 스며들었다. 초이의 화폭에는 그렇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시선이 머물고,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절규가 반사되며,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유머가 스치듯 지나간다.

    ‘죠셉(Joseph)’이라는 이름이 품은 복선처럼, 그의 회화에는 종교적 정조(情調)가 흐른다. 꿈을 해석하던 성서(聖書) 속 요셉처럼, 초이의 붓은 겹쳐진 얼굴과 분열된 자아를 따라 무의식의 심연을 더듬는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것은 예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흑경(黑鏡), 어둠 속에서 반사되는 감정의 표면이다.
    Study figure N13, Soft pastel on ingres paper, 65 x 50 cm (15P), 2024. / 필자 제공
    Study figure N13, Soft pastel on ingres paper, 65 x 50 cm (15P), 2024. / 필자 제공
    나, 혹은 아무도 아닌

    초이는 오랫동안 많은 얼굴을 그려왔다. 하지만 그 어떤 얼굴도 자신의 것으로 특정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익명의 형상들은 누군가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말로 채 다할 수 없는 질문의 그림자에 가깝다. 최근의 작업에서 초이는 보다 깊은 내면으로 향한다. 점과 원, 반사된 거울, 눈을 감은 인물들. 그의 그림은 이제 외형보다 감각의 흐름, 무의식의 리듬,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직관(直觀)의 반응을 포착한다. 우연은 질서가 되고, 화면은 시적 감응이 작동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초이의 그림은 결코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지되는 것이며 침묵 속에 놓인 질문이다. 어둠 속에서 오감을 열고 자신의 얼굴이라 믿었던 가면(假面)들이 흩어진 공간을 지난다. 그리고 마침내 거울조차 없는 방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눈앞에 떠오른 그 얼굴은 모두의 얼굴인 동시에 아무도 아닌 자의 얼굴이라는 것을.
    Figure in front of the wall N1, Oil and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100F), 2024. / 필자 제공
    Figure in front of the wall N1, Oil and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100F), 2024. / 필자 제공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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