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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 박물관, 명화보다 드레스가 주목받은 최초의 패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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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김인애의 Art de Vivre

    루브르 박물관의 사상 첫 패션 전시

    105만 명이 찾은 '루브르 꾸뛰르'
    아트 앤 패션: 스테이트먼트 피스

    아름다움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프랑스 럭셔리의 방식
    공중에 뜬 듯한 실루엣의 드레스, 뎀나 바잘리아의 프레타포르테 2020 봄/여름 컬렉션 Balenciaga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공중에 뜬 듯한 실루엣의 드레스, 뎀나 바잘리아의 프레타포르테 2020 봄/여름 컬렉션 Balenciaga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루브르에 선 꾸뛰르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번에는 꾸뛰르를 찾는 전시가 열렸다. 지방시, 디올, 이브 생 로랑 등 45개 패션 하우스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박물관의 소장품과 함께 전시된 <루브르 꾸뛰르 Louvre Couture>는 105만 명이 관람하며 루브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뜨거운 호응에 7월 21일 종료 예정이던 전시는 한 달간 연장돼 8월 24일 막을 내렸다.
    루브르가 궁전이던 시절, 나폴레옹 3세가 거주했던 아파트의 응접실 / 사진. © Musée du Louvre - Audrey Viger
    루브르가 궁전이던 시절, 나폴레옹 3세가 거주했던 아파트의 응접실 / 사진. © Musée du Louvre - Audrey Viger
    화면으로 전할 수 없는 감각

    패션의 화려함에 이끌려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장인의 손길이 깃든 작품들을 마주했다. 나폴레옹 3세가 살았던 웅장한 아파트와 장식예술품 사이에 놓인 드레스, 빛을 따라 결을 드러내는 자수는 화면으로 전할 수 없는 감각을 일깨웠다. 젊은 세대를 비롯한 대중이 전시에 몰려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디지털 화면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현장에서만 가능한 감각적 경험에 강하게 반응한 것이다.
    나폴레옹 1세의 제복을 연상시키는 알렉산더 맥퀸의 첫 번째 지방시 컬렉션 Givenchy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나폴레옹 1세의 제복을 연상시키는 알렉산더 맥퀸의 첫 번째 지방시 컬렉션 Givenchy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루브르와 꾸뛰르, 맞닿은 본질

    루브르에서 꾸뛰르가 전시된 의미는 무엇일까. 꾸뛰르(Haute Couture)는 고객을 위해 장인이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맞춤 의복으로, 정교한 기술과 희소성이 핵심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루브르 장식예술부 디렉터 올리비에 가베(Olivier Gabet)는 이렇게 말했다. “루브르의 방대한 소장품은 예술사의 흐름과 함께, 시대별로 달라진 취향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루브르는 본질적으로 ‘꾸뛰르’다.” 루브르와 꾸뛰르는 시대가 달라도 장인정신과 전통을 이어 예술적 유산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좌] 2010-2011 파리-비잔틴 컬렉션, 샤넬  [우] 필락테르, 가는 금속선을 꼬아 만드는 세공 기법의 중세(12-13C) 성물함 / 사진. © 김인애
    [좌] 2010-2011 파리-비잔틴 컬렉션, 샤넬 [우] 필락테르, 가는 금속선을 꼬아 만드는 세공 기법의 중세(12-13C) 성물함 / 사진. © 김인애
    예술과 럭셔리의 교차점

    이번 전시는 그 연결고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비잔틴 시대를 테마로 제작된 샤넬의 목걸이와 팔찌는 금속을 레이스처럼 섬세하게 뚫고, 둥근 수지 장식을 얹어 화려함을 강조했다. 이 작품이 루브르 소장 비잔틴 유물 옆에 놓이자, 관람객들은 언뜻 보기에 두 작품을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할 만큼 구분을 어려워했다. 이 순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샤넬 제품은 몇 피스인지" 퀴즈를 냈는데, 응답자의 40%가 실제 유물을 샤넬로 착각했을 만큼, 두 세계는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었다. 호기심과 재미를 더하는 이런 전시 구성은 관람객들을 오래 머물게 했고, 패션과 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칼 라거펠트, 2019 마르탱 래커 가구 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재킷 Chanel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칼 라거펠트, 2019 마르탱 래커 가구 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재킷 Chanel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루브르, 거대한 무드보드

    가베는 루브르를 하나의 '거대한 무드보드'라고 표현했다. 전시 공간을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보지 않고, 디자이너와 예술가에게 아이디어와 창작의 실마리를 건네는 원천으로 본 것이다.
    서양 옻칠 기법인 ‘마르탱 래커’로 만들어진 장식 서랍장  / 사진. © Musée du Louvre, dist. GrandPalaisRmn / Thierry Ollivier
    서양 옻칠 기법인 ‘마르탱 래커’로 만들어진 장식 서랍장 / 사진. © Musée du Louvre, dist. GrandPalaisRmn / Thierry Ollivier
    칼 라거펠트의 생전 마지막 샤넬 컬렉션에 그 관계가 잘 드러난다. 그가 주목한 18세기 서랍장의 표면에는 꽃과 새 같은 자연 모티프가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고, 은빛 청동 장식과 곡선 무늬가 더해져 있다. 라거펠트는 이를 흰색 스팽글과 자수로 옮겨 반짝임과 입체감을 살렸고, 서랍장의 흰색과 푸른색 대비 역시 전체적인 디자인에 반영해 18세기의 미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서랍장과 나란히 전시되어, 과거의 디테일이 어떻게 오늘의 꾸뛰르로 이어졌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르탱 래커 장식 서랍장의 은도금 청동 장식  / 사진. © Musée du Louvre, dist. GrandPalaisRmn / Thierry Ollivier
    르탱 래커 장식 서랍장의 은도금 청동 장식 / 사진. © Musée du Louvre, dist. GrandPalaisRmn / Thierry Ollivier
    꾸뛰르와 예술을 잇는 컬렉션

    전시는 꾸뛰르가 태생부터 예술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꾸뛰르의 창시자인 찰스 프레드릭 워스부터 자크 두세, 폴 푸아레 같은 초기 꾸뛰리에들은 모두 예술품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수집 컬렉션을 구축했고, 그 축적된 자산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디올,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 등 후대의 꾸뛰리에들 역시 같은 흐름을 이어갔다. 꾸뛰르와 예술과의 관계에서 변하지 않는 핵심은 ‘컬렉션’이라는 것이 이번 전시가 제시한 키워드였다.

    이들의 수집 컬렉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적 수집의 차원을 넘어섰다. 그 결과 시대의 가치관과 미적 감각을 선도하는 문화 기관으로 발전했고, 예술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아카이브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루이 비통 재단이나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같은 메종들의 문화 활동은 바로 이 흐름을 계승한다. 결국 꾸뛰르는 사치재의 영역을 넘어 문화와 예술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서양 옻칠 기법으로 만들어진 서랍장과 이를 영감으로 한 2019 오뜨 꾸뛰르 컬렉션 Chanel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Matheus
    서양 옻칠 기법으로 만들어진 서랍장과 이를 영감으로 한 2019 오뜨 꾸뛰르 컬렉션 Chanel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Matheus
    헤리티지의 힘, 루브르와 메종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까르띠에, 디올, 돌체앤가바나, 루이 비통을 비롯한 주요 메종들이 각각 5만 유로를 내고 루브르 자선 갈라 디너에 참석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럭셔리 산업에서 헤리티지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높은 가격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소비자들은 제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전통과 브랜드 스토리를 함께 구매한다. 아카이브는 이런 역사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가격의 가치를 설명해주는 자산이다. 따라서 메종들이 루브르라는 국가적 문화유산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것은 명목상의 후원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반이자 미래 영감의 원천을 확보하는 투자였다.
    존 갈리아노, 2006-2007 F/W 오뜨 꾸뛰르, 바로크적 위엄을 표현한 자수·채색 실크 오간자 드레스 Christian Dior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존 갈리아노, 2006-2007 F/W 오뜨 꾸뛰르, 바로크적 위엄을 표현한 자수·채색 실크 오간자 드레스 Christian Dior / 사진. © Musée du Louvre - Nicolas Bousser
    아름다움의 주도권

    아름다움의 재생산을 누가 주도하는가. <루브르 꾸뛰르>가 던진 진짜 질문이었다. 럭셔리 브랜드는 기술과 감각, 숙련된 지식을 제도적으로 지켜내고, 독점 가능한 자산으로 관리한다. 매혹적인 이야기와 전통의 이름으로 감싸진 이 유산은 막대한 수익으로 전환된다. 인간의 시간이 깃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그것을 자본으로 바꾸는 능력. 프랑스 럭셔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주도권이며 프랑스 럭셔리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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