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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뷔시와 호쿠사이가 말한다…불확실성 시대에 파도 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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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김수미의 최애의 최애

    드뷔시의 교향적 스케치 '바다'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예술가는 답을 알고 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이제 AI 때문에 미래가 예측할 수 없게 바뀐다잖아, 다들 대비책이 있어?”
    “나 최근에 꿈 생겼어. 발레 학원에서 피아노 치는 할머니 되는 거!”
    친구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정말 현실적인 계획 같은 거 말야.”

    친구가 건넨 질문이 며칠간 마음에 남았다. AI와 관련한 여러 콘텐츠를 살펴볼수록 AI가 절대 하지 못할 사각지대 같은 건 없어 보이고, 앞날은 더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현실적인 대비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발레 학원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러다 종국에는 이런 질문에 다다랐다. 인간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완벽히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이던가?

    미래를 정확히 알고 싶다는 마음은 실패를 피하고, 위험을 멀리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쌓는다 해도 유추한 결과는 언제나 빗나갈 가능성을 품는다. 주식시장의 등락이나 선거 결과처럼 과거의 방대한 데이터가 쌓여 있어도 미래를 정확히 맞히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래는 결코 과거와 똑같이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불확실한 흐름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할까? 놀랍게도 어떤 예술가들은 앞날을 미리 내다본 것처럼 시대의 변화를 열어왔다. 그들의 선택과 태도 속에 우리가 배울 힌트가 숨어있진 않을까?

    호쿠사이와 드뷔시, 파도에서 만나다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70세에 그린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는 19세기 중엽, 우키요에 판화들과 함께 유럽에 흘러 들어갔다. 높이 뻗은 파도가 손끝을 갈퀴처럼 움킨 순간이 정지 화면처럼 포착되어 있고, 그 너머 고요한 자태의 후지산이 관람자와 눈을 맞춘다.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면 배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납작 엎드려있는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당대 일본의 여러 우키요에 가운데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충격과 영감을 안긴 작품이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 출처. picryl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 출처. picryl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필두로 음악계에서 인상주의 흐름을 이끌던 드뷔시는, 1905년에 교향적 스케치 <바다>를 썼다. 이 작품의 초판 악보 표지에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가 실렸다. 드뷔시 <바다>의 초판 악보는 유럽 인상주의의 선두에 선 그림과, 20세기 관현악법의 새 기준을 마련한 음악의 상징적 교차점인 셈이다. 두 작품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글들은 많지만, 드뷔시가 호쿠사이의 파도에서 무엇을 보았을지는 안개 속에 있다. 물론 단순한 표지 장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 우연으로만 여기기에는 두 작품이 공유하는 감각이 선명하다고 느껴진다.
    드뷔시 <바다> 초판 악보 / 출처. picryl
    드뷔시 <바다> 초판 악보 / 출처. picryl
    예측이 아닌 의심으로 혁신한 드뷔시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에 붙는 ‘인상주의’라는 명찰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들에는 이 수식어가 달라붙어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색채 자체를 회화의 주제로 삼았듯, 드뷔시 역시 스쳐 가는 인상이나 분위기를 음향과 화성의 빛깔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협화음을 해소되어야 하는 긴장이 아닌 고유의 색채로 다뤘고, 병행화음, 5음계, 온음음계 등 기존에 제한적으로만 쓰이던 요소들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끌어올렸다.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활용해 이러한 실험을 구현한 <바다>는 발표 당시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지만, 관현악에서 ‘음향의 회화성’을 제안한 혁신적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 동시대·후대 작곡가들에게 직접적 영감을 주었다.

    드뷔시에게 예언자적인 자질이 있었을 리는 없다. 그가 음악사에 인상주의라는 새 물결을 일으킨 배경엔 그의 삶에서 꾸준하게 드러난 특징 하나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바로, 전통을 곧이곧대로 따르길 매우 싫어했다는 점이다. 드뷔시는 맹목적으로 관습을 따르는 행위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콩세르바투아르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선생님 리듬은 답답해서 숨이 막혀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소년은 작곡가가 되고 나서 “이해할 수도, 연주할 수도 없는 이상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모양(『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그의 작곡 동력은 ‘지금의 관습, 정석, 질서가 정말 최선인가?’라는 집요한 의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아카데미가 정하는 길만이 옳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나만의 자유와 내 생각의 자유가 너무도 소중합니다.”
    _ 피터 게이, 정주연 옮김 『모더니즘』 (민음사)
    드뷔시 / 출처. picryl
    드뷔시 / 출처. picryl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믿음이 탄생시킨 역작

    반세기 남짓을 거슬러 올라가 호쿠사이의 삶을 들여다보아도 비슷한 특징이 포착된다. 그가 70세 무렵, 훗날 미술사의 큰 전환점이 될 작품을 그리며 했던 생각은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더 잘 그릴 수 있을 텐데”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낼 기세로 생애 3만 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렸다는 기행에 가까운 그의 열정에는 현재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자기 의심과 더 나은 성취를 향한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서양의 원근법을 수용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반영하고, 인간 대신 자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던 이유 또한 그러한 의지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는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무언가를 시도해 보면 분명 더 큰 만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꾸준히 수련하며 비울 것은 비우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태도를 평생 견지한 그는 끝내 역사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내 나이 여섯부터 사물의 꼴을 본떠 그리는 재주가 있어 반백 이후 이런저런 그림을 수없이 그렸건만 일흔 전에 그린 바 실로 변변한 것이 없고 일흔셋 간신히 온갖 짐승의 뼈대와 초목이 나고 자람을 이해할 수 있었으매 고로 여든여섯이면 더욱 솜씨가 늘고 아흔이면 또한 그 깊은 뜻을 깨달아 백에는 그야말로 신통해질 뿐 아니라 백수십에는 한 점 한 획이 살아나리니 바라건대 장수의 신이여 내 예언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지켜보시라_ 그림에 환장한 일흔여섯 늙은이 만지 씀”
    _가쓰사키 호쿠사이, 김동근 옮김 『호쿠사이 부악백경』 (소와다리)
    제자인 게이사이 에이센이 그린 가쓰시카 호쿠사이 초상화 / 출처. picryl
    제자인 게이사이 에이센이 그린 가쓰시카 호쿠사이 초상화 / 출처. picryl
    어떤 미래는 상상에서 온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어령 작가는 호쿠사이가 그린 파도를 두고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순간으로 축소한 가마에(기본자세)’라 표현했다. 이미 지나온 것과 앞으로 올 것을 동시에 담아내는 단 하나의 자세. 이건 어쩌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떤 변화가 닥쳐도 맞설 수 있는 태세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드뷔시와 호쿠사이가 공통적으로 갖췄던 기본자세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 상상에 가닿으려는 태도’였다. 이것을 어쩌면 ‘꿈꾸기’라고 바꿔 불러도 좋지 않을까? 현실 도피적인 몽상이 아닌 현재의 조건을 직시하면서도 그 너머를 새롭게 그려내는 창조적 태도, 불확실성을 피하지 않고 뛰어드는 모험심이 뒤따르는 꿈꾸기 말이다.

    미래는 외부에서 주어진 흐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 우리 안에서 꺼낸 상상이 미래를 만든다. 인간은 예측이 아니라 선택의 힘으로 살아온 존재다.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리는 용기와 뒤따르는 두려움, 부단한 끈기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코어일 것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상상하고 그를 위해 실패를 무릅쓰는 작은 모험은 그 코어를 단단하게 만드는 반복 운동이다. 친구에게 농담처럼 내뱉었던 ‘발레 학원에서 피아노 치는 할머니’라는 꿈도 어쩌면 내 미래의 구체적인 한 단면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작은 상상이 나만의 모험을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니까 말이다.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미래는 꿈꾸고 모험하는 자들의 것이다.

    [관련 영상] ▶▶▶ 드뷔시 <바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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