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도 '위법' 美 상호관세…'보수우위' 대법원, 트럼프 손 들어줄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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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9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를 활용한 것이 위법하다고 7대 4로 판결했다. 1심을 맡았던 국제무역법원(CIT)이 지난 5월 관세로 피해를 본 미국 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정부 패소 판결을 내린 것과 같은 결론이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대법원에서 다툴 것을 고려해 10월14일까지 판결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의 도움을 받아 (관세를)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게 사용하겠다"고 SNS에 적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월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했으며 협상을 거쳐 8월7일부터는 15%를 부과하고 있다.
"과세 권한은 의회에 전적으로 귀속"
항소심 재판부는 다수의견에서 트럼프 정부가 주장하는 권한의 폭이 "거대한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수반"하는 '주요 문제의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 대상이라면서, 명확한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세의 권한은 헌법에 따라 의회에 전적으로 귀속된다(the power of the purse (including the power to tax) belongs to Congress.)"고 했다. "유효한 의회 승인이 없이는 대통령은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Absent a valid delegation by Congress, the President has no authority to impose taxes.)"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IEEPA에 근거해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임의로 부과하고, 캐나다·멕시코·중국에 이른바 '펜타닐관세'를 매겼다. 그러나 모두 2심까지 위법 판결을 받은 만큼 이 조치에 근거한 협상력은 상당히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1심 "무역법 122조와 상충" 2심 "상충 아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근거로 시행한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한 국제무역법원(USCIT)의 지난 5월28일 판결에 정부가 항소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CIT는 의회가 IEEPA를 제정할 때 권한을 제한하려는 명시적인 의도가 있었다면서 상호관세 및 펜타닐 관세 등이 "대통령의 권한을 초과했으며 위법"이라고 결론지었다. 트럼프 정부는 외국 정부와의 협상카드(레버리지)로서 관세가 활용된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재판부는 "이런 해석은 사실상 어떠한 조치도 허용하게 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밝혔다.
1심 판결과 2심 판결은 법적인 논리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1심 법원은 1974년 의회가 무역법(Trade Act)를 제정하면서 122조를 포함시켰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조항은 무역적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제한적(관세 상한선 15%, 제한기간 150일)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점에 미루어 볼 때 의회는 무역수지 문제에 대한 관세 부과 권한을 이같이 좁은 범위로 한정했으며 IEEPA가 아니라 122조에 그 권한을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심 재판부는 "전 세계적 상호관세는 미국 상품무역의 대규모 및 지속적 연간적자"에 대응해 부과됐으며, 이는 122조의 제한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1심 재판부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 두 법률이 상호 배제적이라고까지 보지는 않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따라 IEEPA 내 조항만으로 상호관세의 위법성을 따졌다.
1심은 IEEPA를 활용한 관세 부과조치의 효력을 취소하고 영구적으로 금지한다고 판결했으나, 항소심은 영구적인 금지 명령(injunction)은 취소하고 이 문제를 1심에서 재검토하기 위해 환송조치한다고 결정했다. 1심 판결에서 금지 명령의 요인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 전 트럼프 정부의 변호사들은 재판부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하는 판결이 나올 경우 "재앙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등과의 합의가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법원이 관세를 설령 무효화하더라도 그 결정을 즉시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이미 다른 국가에 약속한 수조달러를 상환할 수 없으며, 이는 재정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합의 무효화가 1929년과 같은 결과(대공황)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철강 등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것으로 이번 조치와 무관하다. 향후 도입될 예정인 반도체 및 의약품 관련 관세도 마찬가지다.
보수우위 대법원에 희망 거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상호관세 조치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이제 미국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파가 우위인 대법원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각종 관세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모든 관세는 여전히 시행 중”이라면서 “매우 편파적인 항소법원이 부당하게 판결했지만, 그들도 결국 미국이 승리할 것을 알고 있다”고 SNS에 적었다. 이어 “대법원의 도움으로 우리는 관세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미국을 다시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9명이다. 이 중에서 6명이 공화당 정권에서 임명된 보수파로 꼽힌다. 클러랜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너,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다섯 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정부에서 임명하거나 조지 H W 부시가 임명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지지자인 방송인 마크 레빈은 “판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면서 ”토머스, 고서치, 캐버너 대법관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을 인정했으며, 얼리토 대법관도 동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의의 뜻으로 이 글을 자신의 계정에 재게시했다.
코니 배럿 대법관은 상당히 보수적인 판결을 하는 편이지만 지난 5월 가톨릭 공립학교 설립을 불허하는 판결에서는 기피 신청을 내서 결과적으로 하급심(불허)이 인정되도록 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파에 속하지만 기존 헌법질서와 가치를 중시하는 제도주의자로서 비교적 중립적인 성향이어서 관세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케탄지 브라운 잭슨,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3명은 확실한 진보파로 관세 부과를 인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보수 대법관 중 한 두 명의 결정에 따라 대법원 결정이 엇갈리게 되는 구도다.
IEEPA를 이용한 관세 부과는 트럼프 정부 출범 전부터 '무리수'로 여겨졌다. 법적 근거가 약해서 소송에서 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 1, 2심 판결 내용은 상당히 분명하게 IEEPA의 취약점을 짚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라고 해도 무조건 트럼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판결을 가능한 늦추거나, 실행 시기를 늦추는 식으로 상호관세 등의 실효성을 연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트럼프 정부가 항소심 과정에서 "설령 상호관세 조치를 무효화하더라도 실행은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IEEPA가 무력화되더라도 트럼프 정부는 무역법 301조 등 다양한 조항을 이용해 관세 부과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적자 보정을 위해 15% 범위 내에서 150일씩 관세부과를 할 권리를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무역법 122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의 상거래에서 차별을 한 나라의 수입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338조도 대체 후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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