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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혁명·中 추격에 악전고투…'세계 최초 신화'도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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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전 글로벌 1위 K기업, 63곳 전수조사 해보니…
    폐업·매각…사라진 1등 기업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2006년 세계 최초로 손가락 움직임을 읽는 모바일 입력 장치 ‘광조이스틱’(OTP)을 상용화한 크루셜텍은 한국 1세대 벤처 기업의 상징으로 통한다. 크루셜텍의 OTP는 200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블랙베리 휴대폰에 독점 공급되며 세계 OTP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기술 혁명·中 추격에 악전고투…'세계 최초 신화'도 무너졌다
    그러나 애플과 삼성전자가 터치 스크린 기반 스마트폰을 내놓자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블랙베리의 아성이 무너지자 ‘황금알’ 같던 OTP는 애물단지가 됐다. 크루셜텍은 2012년 적자 전환한 데 이어 2014년 매출이 73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크루셜텍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흑자로 쌓아둔 유보금 10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어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지문인식 시스템을 개발했다.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납품한 뒤 2016년 32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부활했다. 성공 가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의 오필름 같은 경쟁사가 등장하고 미·중 갈등이 이어지면서 중국 고객사를 빼앗겼다.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난해 결국 상장폐지를 택했다.

    ◇ 시장 축소되자 1등 업체도 고전

    기술 혁명·中 추격에 악전고투…'세계 최초 신화'도 무너졌다
    크루셜텍 사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도 기술 패러다임 변화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분야별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중소·벤처기업은 63곳이었다. 세계 5위 안에 들면서 점유율 5% 이상을 차지한 한국의 ‘세계일류상품’은 2001년 55개에서 2024년 609개로 급증했다.

    1등 기업이 늘었지만 계속 질적으로 발전한 건 아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린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일류상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LCD 밝기를 조절하는 부품인 프리즘시트 제조사인 엘엠에스, 평판디스플레이(FPD) 기판 절단면 연마 장비를 제조하는 미래컴퍼니 등은 수술용 로봇 같은 여러 신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반등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12년 LED(발광다이오드) 식각장비 시장의 60%를 장악한 기가레인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M의 독점을 깨며 주목받던 미래나노텍의 LCD 패널 부품 ‘UTE필름’은 후발 경쟁 업체 등장으로 현재는 세계일류상품에서 제외됐다. 미래나노텍은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 경쟁 격화로 매각·폐업 이어져

    잘나가던 국내 전자식 도어록 업체들도 난관에 봉착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은 국내 중소기업 대양디앤티와 아이레보가 세계 전자식 도어록 시장의 70%를 점유하며 글로벌 1, 2위를 다퉜다. 하지만 스마트홈의 필수 요소로 전자식 도어록이 부각하자 미국 하니웰, 일본 파나소닉, 중국 샤오미 등 글로벌 대기업이 잇달아 이 시장에 진출했다. 그 여파로 급성장하던 아이레보는 2007년 스웨덴의 아사아블로이에 인수돼 현재는 전자식 도어록 ‘게이트맨’ 브랜드로 흡수됐다. 대양디앤티는 국내 기업에 매각된 뒤 사업이 크게 축소됐다. 한때 새로운 수출 상품으로 떠오른 조립식 건축물을 유엔본부에 공급한 캬라반이에스도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개인용 온열기 산업에선 기업별 온도 차가 크다. 1988년 세계 최초로 개인용 온열기를 개발한 미건의료기는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201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누가의료기는 2020년 이후 2022년을 제외하고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반면 후발 주자인 세라젬은 안마의자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2013년 2000억원이던 매출을 지난해 5460억원으로 불렸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경기 침체가 길어져 세계 1등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소기업 자체적으론 시장 변화와 기술 발전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대기업과 공동 R&D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황정환 기자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 M&A팀 황정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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