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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지구의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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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훈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대표
    [한경에세이] 지구의 인내심
    꽃밭에서 먹이를 찾는 북극곰, 백화하는 산호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극단적 기후 현상들은 우리의 현실이다. 과학계는 20세기 이후 기후변화의 95% 이상이 인간 활동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그 핵심은 산업화 사회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탄소 배출이다. 현대인은 전기 없이,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근본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딜레마의 핵심에는 경제적 오프셋(offset) 문제가 있다. 이는 환경 개선을 위한 추가 비용이 경제적 효익을 상쇄하는 현상을 말한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해답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용이 급격히 떨어져 일부 지역에서는 화석연료와 경쟁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그리드 패리티(기존 전력과 같은 수준의 발전 단가)에 도달하지 못한 기술이 많다. 정부 지원과 탄소세 도입으로 보급한다지만 그 비용은 여전히 누군가의 부담이다. 해상풍력, 수소 에너지, 지열 발전 같은 다양한 기술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기차 확산도 비슷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전기차는 친환경적이지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가 문제다. 여전히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전기차 증가는 단기적으로는 탄소 배출 위치만 바꿀 뿐이다. 전력망의 청정화와 전기차 보급 속도를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다.

    더 복잡한 문제는 인공지능(AI)이다. AI는 거대한 에너지 소비자며, 챗GPT 같은 서비스는 일반 검색보다 100배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의 탄소 집약도는 일반 센터보다 50%가량 높다고 한다. AI가 창출하는 효율성 개선이 AI 자체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과연 상쇄할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가 세계 전력의 최대 8%까지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보면, 이 계산은 매우 불리해 보인다.

    결국 우리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빠른 전환이 필요하지만, 각각의 대안 기술도 상당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특히 AI처럼 오프셋이 명확히 불리한 분야에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완벽한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차선책을 조합해 나가면서 해법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합의의 어려움이다. 한 국가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한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국제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인류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지구 역사상 기후변화를 스스로 일으킨 최초의 종이면서, 동시에 이를 인식하고 해결할 능력을 지닌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가속화하고 있는데, 인류의 집단적 지혜는 언제나 발휘될 수 있을까. 인류는 제2의 공룡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극복한 첫 번째 종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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