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소녀 옆을 지킨 소년의 뜨거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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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
증국상 감독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
증국상 감독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
입시 직전의 한여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제를 풀고,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폭력은 잔인하게 반복된다. 피부에 달라붙은 땀, 점점 흐릿해지는 교실의 공기, 입시의 압박, 얼굴을 때리는 땡볕과 같은 여름 채도를 감정적 긴장감으로 변환한 영화의 시각적 섬세함이 돋보인다. 낮과 밤이 교차하며 폭력과 보호, 절망과 희망도 겹겹이 증폭되어 감정의 밀도를 시각적 체감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그 흔한, 지켜주겠다는 거창한 대사나 큰 목소리는 없다. 그저 소녀가 주저앉을 때 소년이 옆을 지켰고, 소녀가 울고 있을 때 함께 있을 뿐. 다정한 침묵과 조용한 위로, 필요할 땐 주저 없이 자기 몸을 내어주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연대의 방식’이 그 어떤 사랑보다 강하고, 그 어떤 정의보다 뜨겁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샤오베이와 첸니엔은 서로에게 많은 말을 걸지 않지만, 존재만으로 서로를 단단히 지킨다.
주동우의 말간 얼굴과 이양천새의 상처 가득한 거친 얼굴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내면이 교차하는 뜨거운 현장이 되었다. 배우의 얼굴 가까이 근접할수록 얼굴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해낼 수 있어 본질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 감독의 의도대로, 청춘의 초상을 배우로 얼굴로 끌어올린 영화적 감흥 덕분에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언정, 2024)
처연하리만큼 닮은 고단하고 치열한 두 청춘의 삶, 그 고통과 연대, 사랑과 성장이 우리네 손끝까지 만져지는 듯하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함께 서 있는 두 청춘의 존재감은 빛났다. 그 여름날 내가 널, 네가 날 지키고 싶었던 마음. 누군가의 옆을 그저 지키고 싶었던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는 것만으로 영화적 존재감은 충분하다. 그 여름의 뜨거운 침묵은,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사랑보다 절실한 연대. 살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지키고자 했던 마음은, 살아남은 후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여 결국 다시 살아낼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 거칠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당신을 살게 하고, 타자를 살릴 ‘무언의 연대’는 과연 무엇인가. 연대의 미학이 더욱 절실한 오늘이다.
[참고문헌]
이언정, 『배우는 배우』, 서울: 동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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