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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저앉은 소녀 옆을 지킨 소년의 뜨거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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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
    증국상 감독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여름은 찬란하지만, 한낮의 더위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며 무기력하게 짓누르고 때론 모든 감정이 들끓어 넘치기도 한다. 증국상 감독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그 뜨거운 계절 속, ‘무언의 연대’가 폭염보다 더 뜨겁게 피어나는 이야기다.

    입시 직전의 한여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제를 풀고,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폭력은 잔인하게 반복된다. 피부에 달라붙은 땀, 점점 흐릿해지는 교실의 공기, 입시의 압박, 얼굴을 때리는 땡볕과 같은 여름 채도를 감정적 긴장감으로 변환한 영화의 시각적 섬세함이 돋보인다. 낮과 밤이 교차하며 폭력과 보호, 절망과 희망도 겹겹이 증폭되어 감정의 밀도를 시각적 체감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그리고 여기 두 청춘이 있다. 주동우가 연기한 우등생 소녀 ‘첸니엔’은 말이 없고 움츠린 채 살아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인물이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소년 ‘샤오베이’는 얼핏 좀도둑이나 양아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말없이 다가가 위로하는 법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후 소년은 말없이 행동으로 소녀 곁에 머문다.

    여기에 그 흔한, 지켜주겠다는 거창한 대사나 큰 목소리는 없다. 그저 소녀가 주저앉을 때 소년이 옆을 지켰고, 소녀가 울고 있을 때 함께 있을 뿐. 다정한 침묵과 조용한 위로, 필요할 땐 주저 없이 자기 몸을 내어주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연대의 방식’이 그 어떤 사랑보다 강하고, 그 어떤 정의보다 뜨겁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샤오베이와 첸니엔은 서로에게 많은 말을 걸지 않지만, 존재만으로 서로를 단단히 지킨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가득 채워지는 두 청춘의 얼굴과 절제된 무언의 연대는 언어보다 무겁고, 침묵보다 큰말을 던진다. 뜨거운 여름, 조용히 울고 있던 청춘은 결국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으로 이렇듯 ‘연대의 미학’을 선보인다. 영화는 유독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을 많이 담는다. 얼굴은 그렇게 서사가 되고 그럴듯한 대사나 화려한 기술 없이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인물과 관객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지우고, 감정의 틈새를 여는 장치가 되어 어느새 관객이두 청춘의 감정에 닿게 하였다.

    주동우의 말간 얼굴과 이양천새의 상처 가득한 거친 얼굴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내면이 교차하는 뜨거운 현장이 되었다. 배우의 얼굴 가까이 근접할수록 얼굴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해낼 수 있어 본질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 감독의 의도대로, 청춘의 초상을 배우로 얼굴로 끌어올린 영화적 감흥 덕분에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언정, 2024)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의 영어 제목인 ‘Better Days’에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향하는 긴 여정, 더 나은 날들을 위한 치열한 여정이 담겨있다. 그 여름은 지나갔지만, 그들이 서로를 지켜냈던 그래서 살아낼 수 있었던 기억은 청춘에게 그렇게 각인되었다. 첸니엔의 그림자, 보호자 노릇을 자청하며 비로소 샤오베이는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았고, 샤오베이의 보호와 지지를 받고 그를 믿어주며 첸니엔 역시 잃었던 웃음과 생기를 되찾았다. 삶이 그토록 잔인할지라도 결국 삶을 놓지 않고 살아갈 이유가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연하리만큼 닮은 고단하고 치열한 두 청춘의 삶, 그 고통과 연대, 사랑과 성장이 우리네 손끝까지 만져지는 듯하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함께 서 있는 두 청춘의 존재감은 빛났다. 그 여름날 내가 널, 네가 날 지키고 싶었던 마음. 누군가의 옆을 그저 지키고 싶었던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는 것만으로 영화적 존재감은 충분하다. 그 여름의 뜨거운 침묵은,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사랑보다 절실한 연대. 살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지키고자 했던 마음은, 살아남은 후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여 결국 다시 살아낼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 거칠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당신을 살게 하고, 타자를 살릴 ‘무언의 연대’는 과연 무엇인가. 연대의 미학이 더욱 절실한 오늘이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소년시절의 너>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이언정 칼럼니스트


    [참고문헌]

    이언정, 『배우는 배우』, 서울: 동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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