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비의 짧았던 신혼

셰익스피어가 쓴 『한여름 밤의 꿈』은 1594년에서 1596년 사이에 쓰인 작품으로 추정된다. 5막으로 구성된 희극으로 진실한 사랑을 찾는 연인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이야기다. 1826년 멘델스존은 『한여름 밤의 꿈』 독일어 번역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작곡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843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멘델스존에게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의 부수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열두 곡의 부수 음악을 만들었다. 멘델스존의 대표작 ‘한여름 밤의 꿈’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가장 유명한 곡은 ‘결혼행진곡’이다. 네 명의 남녀가 꿈에서 깨어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서정적인 현악기 연주도 행진곡처럼 느껴지게 하는 곡이다.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 요정들의 보호를 받으며 달빛 아래 잠든 티타니아 / 그림. ⓒ존 시몬스, 위키피디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 요정들의 보호를 받으며 달빛 아래 잠든 티타니아 / 그림. ⓒ존 시몬스, 위키피디아
셰익스피어와 멘델스존은 자신이 쓴 희극과 음악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일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누구에게나 한여름 밤의 꿈은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잊지 못할 달콤했던 한순간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에 꾸었던 한여름 밤의 꿈, 어쩌면 그것은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원초적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기 훨씬 이전, 바르셀로나에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고,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사랑 이야기가 탄생한 적 있다.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난 뒤 가우디에 의해 잊혔던 전설이 아름다운 건축으로 오롯이 되살아났다.

아라곤 왕국은 피레네산맥 중부 아라곤 지방과 카탈루냐와 발렌시아를 중심으로 중세와 초기 근대에 걸쳐 존재했던 나라다. 1137년 바르셀로나 백작은 아라곤 왕국과 동군연합을 맺고 아라곤 연합왕국을 형성했다. 연합왕국 통치하에서 바르셀로나 백작은 주변의 카탈루냐 백작령들을 통합해 카탈루냐 공국을 수립했다. 1469년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함으로써 통일 스페인 왕국의 기반을 만들었으나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배하며 카스티야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마르틴 1세(Martín I el Humano, 1356~1410)는 1397년 아라곤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인물이다. 그와 함께 공동 왕으로 활약한 아내 마리아 데 루나는 1406년 갑작스레 사망했다. 1409년에는 아들마저 반란을 진압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왕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계속 왕에게 재혼을 건의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여인이 마르가리타 데 프라데스(Margarita de Prades, 1388~1429)다.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고귀한 신부였다. 1409년 9월 17일 마르틴 1세는 마르가리타와 성대한 결혼 예식을 치렀다. 자신의 지시로 만든 벨예스구아르드(Bellesguard)에서였다. 마르틴 1세는 인문 왕 또는 인도주의자라고 불린다. 전쟁이나 권력 다툼보다 책을 읽고 인문학에 심취하는 걸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려한 궁전을 떠나 더위를 식혀줄 한적한 장소에 아담한 여름 별장을 지어 머물고자 했다. 그래서 건축된 곳이 바로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뜻을 가진 벨예스구아르드다.
아라곤 왕국 마르틴 1세와 아름다운 왕비 마르가리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벨예스구아르드. 돌과 벽돌로 지은 가로세로 15m 높이 19.5m 규모의 신 고딕 양식 건물이다. / 사진. ⓒ 김혜경
아라곤 왕국 마르틴 1세와 아름다운 왕비 마르가리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벨예스구아르드. 돌과 벽돌로 지은 가로세로 15m 높이 19.5m 규모의 신 고딕 양식 건물이다. / 사진. ⓒ 김혜경
마르틴 1세는 아비뇽 교황의 지지자였다. 베네딕토 13세 역시 마르틴 1세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결혼식이 거행될 때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주례를 서며 이들 부부를 축복했다. 당시 마르틴 1세는 53세였고 마르가리타는 21세였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이들의 결혼 생활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빨리 후사를 봐야 하는 마르틴 1세는 마르가리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마르가리타 또한 왕자를 낳는 일이 급했기에 마르틴 1세에게 최선을 다했을 터이다. 이들은 벨예스구아르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결국 1410년 5월 31일 마르틴 1세는 눈부시게 고운 아내 마르가리타를 두고 홀로 눈을 감았다. 8개월 남짓했던 신혼의 꿈은 이렇듯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카탈루냐 광장 역에서 7호선 지하철을 타고 아빈구다 티비다보 역에 내려 10여 분가량 걸어가면 돌담이 이어진 한적한 마을이 나타난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정문이 나오고 철문 안쪽으로 아담한 조립식 목조 건물이 보인다. 벨예스구아르드 매표소 겸 안내소다. 여기서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옛 성터 같은 현장이 등장한다. 계단을 올라 망루에 서면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세로 거슬러 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마르틴 1세 사후 벨예스구아르드는 마르가리타의 소유가 되었다가 수없이 주인이 바뀌던 중 식품 산업으로 부를 쌓은 하우메 피게레스에게 매입된다. 가우디와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곳을 다시 설계할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가 1887년 돌연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에 그의 부인 마리아 사게스 몰린스는 1900년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벨예스구아르드가 카사 피게레스(Casa Figueres)라고 불리는 이유다. 처음 그녀의 생각은 소박했다. 가족이 거주할 쾌적한 집이면 족했다. 그러나 가우디의 생각은 달랐다. 벨예스구아르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자신의 손으로 사라진 왕궁을 재현해 내고 싶었다.

옛 성터를 내려오면 오른쪽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이 가우디에 의해 다시 태어난 벨예스구아르드다. 아라곤 왕국의 전성기에 유행했던 건축은 단연 고딕 양식이었다. 가우디는 이를 충분히 살리면서 그 위에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혔다. 주위의 자연환경과 어울리도록 외벽은 부지에서 직접 발견한 점판암을 사용했다. 현관의 둥근 아치에는 색깔이 다른 작은 돌을 모아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의 테세라를 만들어 큼직하게 배치했다. 테세라의 오묘한 질감과 외벽의 투박한 점판암 질감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변의 잡석을 이용해 수수하게 지은 외관이지만, 갖가지 색깔의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테세라를 현관에 입체적으로 배치해 회화적 느낌을 줌으로써 중세의 신비를 재현해냈다. / 사진. ⓒ 김혜경
주변의 잡석을 이용해 수수하게 지은 외관이지만, 갖가지 색깔의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테세라를 현관에 입체적으로 배치해 회화적 느낌을 줌으로써 중세의 신비를 재현해냈다. / 사진. ⓒ 김혜경
입구 양쪽에는 타일로 장식된 돌 벤치가 놓여 있다. 그 위를 커다란 물고기가 헤엄치며 카탈루냐 국기와 왕관을 운반한다. 국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중세 카탈루냐가 지중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철문의 장식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자유분방하다. 기둥 좌우와 상단에는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니고 가운데는 한국 사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꽃살문과 흡사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위쪽은 구엘 저택에서 본 듯한 악기의 조합이 현란하다.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카탈루냐어로 쓰인 글자도 보인다.

‘Ave Maria Purrisima sens pecat fou concebuda’
입구 양쪽 타일 벤치에는 카탈루냐 국기와 왕관을 운반하는 물고기가 장식되어 있고, 철문 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라는 글귀가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 사진. ⓒ 김혜경
입구 양쪽 타일 벤치에는 카탈루냐 국기와 왕관을 운반하는 물고기가 장식되어 있고, 철문 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라는 글귀가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 사진. ⓒ 김혜경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가우디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지만, 벨예스구아르드에서 마주하는 이 글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관 테세라 위에는 ‘Bellesguard’ 표식이 문패처럼 붙어 있다. 위쪽 창에는 좌우와 상단 벽에 사각형 푸른색 타일들이 나란히 박혀 있는데, 그 안에는 흰색 별들이 꽉 들어차 있다. 가운데 무엇이 있길래 이토록 많은 별이 호위하고 있는 걸까? 유리로 모자이크된 창 중앙에는 금성(金星, Venus)이 자리하고 있다.
정문 위에 문패처럼 붙어 있는 ‘Bellesguard’ 표식.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뜻이다. 그 위쪽으로 난 창에는 수많은 별에 둘러싸인 금성(金星, Venus)이 유리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정문 위에 문패처럼 붙어 있는 ‘Bellesguard’ 표식.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뜻이다. 그 위쪽으로 난 창에는 수많은 별에 둘러싸인 금성(金星, Venus)이 유리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건물 밖에서 올려다보면 실감 나지 않을 수 있으나 안에 들어가 주 계단에서 자연광을 받아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쳐다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건물 안에서 본 팔각형 금성 스테인드글라스 모습. 녹색, 보라색, 노란색 조화가 눈부시다. 가우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비운의 마르가리타 왕비로 비유했다. / 사진. ⓒ 김혜경
건물 안에서 본 팔각형 금성 스테인드글라스 모습. 녹색, 보라색, 노란색 조화가 눈부시다. 가우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비운의 마르가리타 왕비로 비유했다. / 사진. ⓒ 김혜경
건물 내부는 외관과 달리 빛으로 가득하다. 석고와 석회 페인트로 칠해진 흰색 벽과 기둥과 천장은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 등과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빛으로 인해 실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둥근 아치로 된 천장은 태양과 구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쇠사슬을 따라 길게 매달린 철제 장식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계단으로 이어진 실내.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 등과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빛이 새하얀 벽과 기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흰 회반죽 마감은 왕비의 순수함과 고결함을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계단으로 이어진 실내.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 등과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빛이 새하얀 벽과 기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흰 회반죽 마감은 왕비의 순수함과 고결함을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천장은 태양과 구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가운데 매달린 철제 장식은 카사 밀라 옥상의 굴뚝을 연상시킨다. 우주인 같기도 하고 투구 쓴 병사 같기도 하다. / 사진. ⓒ 김혜경
천장은 태양과 구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가운데 매달린 철제 장식은 카사 밀라 옥상의 굴뚝을 연상시킨다. 우주인 같기도 하고 투구 쓴 병사 같기도 하다. / 사진. ⓒ 김혜경
다락방은 2층 구조다. 가우디는 반원형 아치와 코벨 아치를 적절히 연결해 기능적인 완벽성을 추구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심미안을 충족시켰다. 구엘 저택에 있는 마구간이 연상되지만, 동굴 느낌이 나는 지하실과 달리 사방에서 빛이 들어오는 불그스레한 다락방은 일출이나 일몰이 막 이루어지고 있는 숲 같은 느낌을 준다. 천장 서까래는 식물의 이파리 구조를 닮았다. 벽돌을 삼각형으로 조합해 격자무늬가 되게 한 것은 무게를 줄이려는 조치였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다락방. 반원형 아치와 코벨 아치를 적절히 연결하여 기능주의와 심미주의 모두를 충족시켰다. 일출이나 일몰이 막 이루어지고 있는 숲에 들어온 느낌이다. / 사진. ⓒ 김혜경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다락방. 반원형 아치와 코벨 아치를 적절히 연결하여 기능주의와 심미주의 모두를 충족시켰다. 일출이나 일몰이 막 이루어지고 있는 숲에 들어온 느낌이다. / 사진. ⓒ 김혜경
위층 다락방은 지붕과 연결되어 있다. 가파른 측면과 이중 경사가 특징인 이런 형태의 지붕을 망사르 지붕이라고 한다.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하면서 건물에 1층 이상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옥상으로 올라 지붕을 바라보면 양쪽 창문이 용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 산 호르헤의 전설을 표현한 것이다. 사면에는 회랑이 만들어져 있고 흉벽이 난간 역할을 해 찬찬히 걸어가며 지붕과 굴뚝을 구경하고 주변 경관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티비다보 산과 콜세롤라 타워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바라다보인다.
용의 머리처럼 생긴 지붕. 두 개의 눈과 콧구멍이 떠오르도록 창문을 배치했다. 악한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 아라곤 왕국의 수호성인 산 호르헤의 전설을 표현한 것이다. / 사진. ⓒ 김혜경
용의 머리처럼 생긴 지붕. 두 개의 눈과 콧구멍이 떠오르도록 창문을 배치했다. 악한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 아라곤 왕국의 수호성인 산 호르헤의 전설을 표현한 것이다. / 사진. ⓒ 김혜경
좁은 계단을 따라 더 올라가면 높다란 첨탑 아래에 이른다. 꼭대기에는 벨예스구아르드의 상징과도 같은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팔이 달린 타일 장식 십자가가 서 있다. 그 밑으로 둘레를 감싸고 있는 왕관과 빨간색과 노란색 모자이크로 치장한 카탈루냐 문양이 보인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아라곤 왕국과 카탈루냐를 상기시키려는 가우디의 의도였다.
가우디의 상징이 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팔이 달린 타일 장식 십자가. 밑으로 왕관과 카탈루냐 문양이 보인다. 지상에서 십자가 꼭대기까지는 33m로 예수의 생전 나이와 같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의 상징이 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팔이 달린 타일 장식 십자가. 밑으로 왕관과 카탈루냐 문양이 보인다. 지상에서 십자가 꼭대기까지는 33m로 예수의 생전 나이와 같다. / 사진. ⓒ 김혜경
벨예스구아르드의 외관은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내부는 무어 양식과 무데하르 양식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고딕이 신에게 좀 더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몸짓이었다면 가우디의 고딕은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게 하려는 그만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잊지 못할 사랑 그리고 이별

건물 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벨예스구아르드는 정원이 참 아름답다. 창가에는 쇠로 만든 아기자기한 화분 받침대가 놓여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식물과 화초가 자란다. 정원에는 뽕나무, 사이프러스, 측백나무 등이 심겨 있다. 정원 중앙에는 타일로 꾸며진 둥근 벤치가 반달처럼 둘로 나뉘어 있다. 벤치 한가운데는 작은 분수가 있고 연못 안에서 수련이 자란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평화와 고요가 밀려온다. 그래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벨예스구아르드는 정원이 아름답다. 중앙에 있는 타일로 꾸며진 벤치는 양쪽 끝에 앉아도 서로 목소리가 잘 들린다. 벤치 한가운데 분수가 있고 작은 연못 안에는 수련이 자란다. / 사진. ⓒ 김혜경
벨예스구아르드는 정원이 아름답다. 중앙에 있는 타일로 꾸며진 벤치는 양쪽 끝에 앉아도 서로 목소리가 잘 들린다. 벤치 한가운데 분수가 있고 작은 연못 안에는 수련이 자란다. / 사진. ⓒ 김혜경
마르틴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마르가리타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바르셀로나 가문이 배출한 마지막 왕이었다. 마르틴 1세가 후계자를 만들지 못하고 죽자, 바르셀로나 가문은 몰락했다. 대신 카스티야의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아라곤 왕조의 왕위에 올랐다.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과부가 된 마르가리타는 왕실의 법도에 따라 독신으로 지내야 했으나 비밀리에 다른 남자와 재혼해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왕비로서의 모든 지위와 권한을 박탈당한 채 산타 마리아 데 발돈첼라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남편마저 돌연 사망함으로써 다시 과부가 된 그녀는 수녀로 서원한다. 이후 본레포스 수도원에서 수녀원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그곳에서 운명했다.

돌담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내 가슴 속에 느끼는 이 고통은 사랑으로 상처받은 거예요.
난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나요?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티시 이노호사가 1989년 스페인어로 부른 노래 ‘Donde Voy’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의미다. 미국으로 불법 이민 온 멕시코 남자가 이민국 단속반에 쫓기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처량한 멜로디에 애절한 가사가 마치 마르가리타의 인생을 노래하는 것 같다. 가우디는 1909년까지 10년 동안이나 벨예스구아르드 건축에 매달렸다. 그는 마르가리타를 떠올리며 잊은 줄 알았던 페페타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잠깐이라도 행복했을 마르틴 1세와 마르가리타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어쩌면 벨예스구아르드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은 마르틴 1세와 마르가리타가 아니라 가우디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