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재료로 택하다
고정 관념을 허문 최소영 작가와
창의적인 작품을 만든 공예가 조민열
청바지는 19세기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 개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에 서부의 광부나 카우보이들이 주로 입던 ‘하찮은 옷’이었다. 1950년대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 제임스 딘, 1960~1970년대 반전과 자유, 유토피아를 꿈꾸는 히피들의 패션이 이제는 대중의 패션, 누구의 옷장에도 있는 기본 아이템이다.
사진출처. unsplash
많은 사람들이 즐겨 입는 만큼 한해 판매되는 청바지도, 버려지는 청바지도 많다. 최근 패션 트랜드는 스파 브랜드가 이끌고 있다. 2주를 주기로 유행하는 스타일을 만들고 안 팔리면 폐기한다. 패스트 패션의 다른 별칭은 정크(Junk, 쓰레기) 패션이다. 대표적인 스파브랜드 H&M은 2012년부터 유기농 천연섬유를 사용한 컨셔스(Consious)의류를 제작하며 과잉생산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캠페인으로 전개 중이다. 그러나 스파브랜드들의 친환경 캠페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정크 패션의 주범, 글로벌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보는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패션계에서 헌 청바지를 활용한 프로젝트는 2013년 런칭한 네덜란드 데님 스타트업 브랜드 ‘머드진스(Mud Jeans)’를 들 수 있다. 머드진스는 ‘청바지 대여 프로젝트’로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청바지를 공유경제 트렌드로 사업화한다. 고객들이 빌리고 반납한 헌 청바지는 후일 새 청바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사로 재추출되어 다시금 빈티지 진으로 판매된다. 그러나 이러한 청바지를 친환경적, 공유경제의 실천으로 활용하려고 순환하려는 실천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큰 성과, 확산성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전 세계 재활용 수거 활용률은 9% 정도, 한국의 비율은 70%에 해당할 만큼 높다. 우리가 재활용 수거함에 버린 의류가 다시 의류로 재활용(섬유 순환·fiber-to-fiber)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전 세계적으로 봐도 약 1%이다. 2024년 기준 환경부에 따르면,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은 약 2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고작 20% 남짓이다.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가 된다.
사진출처. unsplash
요즘 청바지가 닳고 찢어져서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바지 핏, 색이 요즘 유행이 아니라 혹은 싫증나서 지금도 수많은 청바지가 의류 수거함에 버려진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은 못 입는 청바지를 가방, 휴대용 파우치 등으로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한다.1) 예술가들도 리사이클링 아트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고전 회화의 새로운 대안 혹은 새로운 시도로 청바지를 소재로 활용한다.
우리 화단에서 잘 알려진 작가는 최소영(1980~)이다. 색, 농담이 다른 청바지의 색, 질감, 결을 풍경으로 만든다. 그는 2004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의 4배 가격에 낙찰되며 주목을 받았다.(이후 작업을 중단했다가 2019년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최소영은 미술대학 재학 시, 드로잉 수업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라.’는 과제를 받았다. 붓과 물감이라는 고전 대신 청바지를 선택했다. 당시는 본인도 흔한 청바지가 미술이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 청바지를 모으기 위해 헌옷수거함을 뒤지며 다양한 청바지를 수거했다.
최소영, 영도다리(Busan Young-Do Bridge), Denim on canvas, 97×162×6.2cm
다채로운 농담, 색채, 삶의 흔적, 디자인 요소 등을 새롭게 발견하고 재미를 느끼며 기존에 자신이 재료, 회화,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을 허물며 집요하게 이어 붙이고 그린 것이 최소영의 그림이다. 인디고 염의 농도, 채도, 질감, 결, 바느질 자국이 다른 청바지와 태그를 배치해 만든 이미지는 우리가 어느 날 버스 창 너머로 내다봤던 강(바다) 위의 대교,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장벽의 흔한 풍경이다. 파란, 노란 물통을 하나씩 각자 머리에 이고 가파른 고개마다 빼곡히 들어앉은 소시민들의 집. 군집에 틈을 내고 숨을 불어넣듯 들어선 집과 집 사이 물길처럼 흐르는 골목길, 그 좁은 길을 거슬러 올라 중턱 어딘가에서 풍경을 내려다 바라볼 때, 누군들 하루 삶을 사느라 몰아 쉬었던 거친 숨을 잠시 내려놓고 삶을 반추하며 고단한 마음을 달래보지 않았을까.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법한 공감은 붓과 물감 대신, 세대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입는 청바지를 예술의 재료로 택한 한 예술가의 시도 덕분이다.
[좌]최소영, 눈온 뒤2(After the Snow 2), Denim on canvas, 112.5×146×8.5cm [우]최소영, 눈온 뒤(After the Snow), Denim on canvas, 162×113×6.5cm / 사진. ⓒmu-um
공예가 조민열도 청바지가 재료다. 어느 날 옷장에 있는 청바지 그리고 작가의 작업실 인근의 봉제소에서 버리는 자투리 청바지 원단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가의 눈에 들어온 순간, 그것은 공예의 재료가 되었다. 짙게 물들인 인디고색 원단을 돌가루로 갈고 접고 맞붙이고 쌓아 가공할 때마다 다른 표정이 나온다. 나무, 돌과 같은 원초적인 자연의 표피가 연상된다. 가공할수록 인위적인 다른 재료들과 달리 오히려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데님만의 매력이다.
조민열, The texture of blue nature N.2, 2025
작가는 금속을 전공했다. 섬유 전공자도 패션 전공자도 아니라, 실과 섬유를 다루는 것은 데님을 자르고 붙이고, 엮고 다른 재료를 덧바르는 단순한 시도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고급 기술보다 오히려 어린아이가 놀이터에서 흙, 돌로 놀듯 청바지를 패션이 아닌 재료로 편하게 자르고, 주물럭거리고, 문지르고, 다른 재료를 덧칠하는 데 주저함, 금기 등이 없어 재료의 면모들을 발견하고 특성을 이해하며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좌] 조민열, Blue nature, 2024 / 사진출처. 우드플레닛 [우] 조민열, Blue nature No.2, Denim, 2024
그가 만드는 것은 기물, 가구, 장신구 등이다. 모두 사물과 쓰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바지를 잘라 띠로 만들고 구부리고 엮고 이어 바구니를 만든다. 그러나 같은 기법으로 제작한 조직도 여러 겹 덧대거나 풀을 먹이고, 옻칠하면 견고함이 더해져 다른 용도로 확장될 수 있다. 원래 익힌 금속 기술을 더하면 예술 장신구도 될 수 있다. 천은 본래 흐물거리는 재료다. 마찰 등 물리적 마찰에도 약하다. 약한 재료가 쓰임, 형태를 갖추려면 견고함이 있어야 한다. 결국 공예의 다양한 제작 기술, 가공법은 재료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거나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창의다. 재료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변증법적 과정이 작가를 장인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