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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칼라 위협하는 AI…변호사도 세무사도 "의뢰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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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성AI'가 바꾼 일자리 지형…사라지는 직업은

    통번역부터 대본 초안까지 '척척'
    법률·회계자문 챗GPT로 뚝딱
    번역가·방송작가·애널리스트 등
    지식기반 직종, AI가 빠르게 장악

    제도·윤리 기준 마련은 '뒷전'
    이미지 등 AI 창작물 오류 땐
    책임 소재·처벌 기준 불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세 건씩 들어오던 의뢰가 요즘은 1주일에 한 건도 없다시피 합니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률 콘텐츠 작성과 계약서 자문을 병행하는 30대 변호사 A씨는 최근 상당수 고객사를 인공지능(AI) 기반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뺏겼다. 최근 고객사 법무 담당자에게 “요즘 웬만한 자문은 챗GPT로 충분히 커버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A씨는 “분쟁 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는 여전히 바쁘지만, 내가 하는 반복적 업무는 이미 대체되고 있다”며 “변호사라고 안심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발전이 일자리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AI는 단순·반복 업무뿐 아니라 고도화된 지식노동까지 빠르게 흡수 중이다. 챗GPT 등장 1년 반 만에 일의 중심축은 ‘지식’에서 ‘손기술’로 이동하고 있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고학력이라도 안심 못 해”

    AI가 가장 먼저 삼키고 있는 영역은 ‘화이트칼라’로 불리던 지식 기반 전문직이다. 애니메이션·영상·기획 등 콘텐츠산업은 물론이고, 법률·세무·번역·기사 작성 등 텍스트 기반 산업 일자리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반복성 높은 구조화된 정보 처리 업무를 하는 일자리는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조차 통번역과 속기 업무 일부를 AI 기반 워크플로우로 처리 중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설문조사원 등 리서치 인력도 AI 기반 리포트 생성 툴의 확산으로 수요가 줄고 있다.

    AI는 방송과 언론사 직원의 일자리도 위협한다. 단순 반복 작업이 많은 업무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어서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B씨는 “과거에는 한 프로그램에 작가 수십 명이 붙었지만 요즘은 AI가 초안을 짜주다 보니 십여 명만 남았다”며 “작가직은 완전히 반 토막 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무 대리, 증권 리포트 등의 업무도 대체 압력을 받고 있다. AI 기반 세무 신고 툴과 자동화 리서치 보고서 작성기가 이미 상용화됐다. 통역사, 설문조사원, 애널리스트 등은 시장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보험 심사역, 보험금 청구 담당자, 행정 보조 인력도 AI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군이다.

    전문가들은 반복적·서술 중심의 텍스트 작업부터 AI 대체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챗GPT 수준의 생성 AI는 문서 요약, 기사 작성, 기획안 작성, 리서치 리포트 작성까지 대체 가능하다”며 “텍스트 기반 직군의 일자리부터 급속히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자리 위협하는 ‘AI 충격’

    AI 시장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25년 3909억달러(약 538조원)에서 2030년엔 1조8117억달러(약 2490조원)로 5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용자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최근 챗GPT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 5명 중 1명이 생성형 AI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생성 AI 앱 점유율도 챗GPT가 72.6%로 압도적이다. 오픈AI는 2025년 매출이 12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22년(2억달러)과 비교하면 6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생성 AI의 등장은 산업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에 의한 화이트칼라의 직무 대체 및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AI 대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업무 유형은 △정보 및 데이터 처리 △직무 관련 정보 수집 및 수신 △추론과 의사 결정 △정보 식별 및 평가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구조화된 정보를 다루는 지식 노동일수록 AI로 빠르게 대체될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AI 위협에 제도적 대응은 ‘제자리걸음’

    AI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제도적 대응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AI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면서 법적·윤리적 기준 마련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법률 검토, 회계 자문, 초안 작성, 이미지 생성 등 여러 분야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오류가 있거나 그로 인해 분쟁이 발생해도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다. 한 대기업 법무담당자는 “AI가 작성한 자문 초안을 그대로 썼다가 문제가 생겨도 결국 책임은 사람이 진다”며 “업무 효율은 높아졌으나 실무자만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해외도 다르지 않다. 영국에서는 변호사들이 AI를 이용해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사건이 발생하자 고등법원 판사가 “이런 행위는 법정 모독이나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AI가 생성한 가짜 판례를 그대로 법정에 제출한 사례가 잇따르며 논란이 된 바 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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