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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의 파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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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섭의 음(音)미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4번> 6월 4,5일 공연 실황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파드되

    낭만주의 재즈처럼 연주한 임윤찬
    포디움에서 춤의 날개 편 메켈레
    전 세계 관객을 파리로 이끈 임윤찬

    지난 6월 4~5일 파리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또 한 번의 역사를 썼다. 그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Klaus Mäkelä)가 이끄는 파리 관현악단(Orchestre de Paris)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 (Piano Concerto No.4 in G minor, Op.40, 이하: 라피협 4번)>을 한 편의 발레처럼 연주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 에는 한국인들을 포함해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 관객이 찾았다. 런던에 살고 있는 제니퍼 여사(72)는 “그의 영혼에 끌려 파리까지 왔고, 양일 공연 모두를 관람한다.”라고 했다. <라피협 4번>은 4개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적게 연주되는 곡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 망명한 이후 1926년에 이 곡을 완성했는데, 1927년 초연 당시 엄청난 혹평을 들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1928년에 개정을 했는데 이 또한 반응이 좋지 않아, 150마디 이상을 삭제하고 오케스트레이션과 피아노 파트를 간결하게 다듬어 최종 버전을 1941년에 내놓았다. 이번에 파리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버전이 바로 1941년 버전이었다.
    임윤찬과 파리관현악단 / 사진. ⓒ이진섭
    임윤찬과 파리관현악단 / 사진. ⓒ이진섭
    낭만주의 재즈처럼 연주한 임윤찬, 포디움에서 춤의 날개 편 메켈레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임윤찬이 무대 위로 등장했고, 그의 뒤를 따라 클라우스 메켈레가 응원의 박수를 치면서 포디움으로 향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갑작스러운 긴박감으로 음이 몰아치는 1악장 Allegro vivace가 시작됐다. 첫째 날 임윤찬은 섬세하면서도 활기차게 도입부를 연주했고, 둘째 날에는 재즈 연주처럼 자유로운 리듬으로 협주곡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파리 관현악단이 D major의 짤막한 악상을 제시하고, 임윤찬의 피아노가 G minor로 응수할 때, 지금까지 경험했던 <라피협 4번>과는 전혀 다른 색감과 소리 경험이 열리는 듯했다. 2주제 부분에서 임윤찬은 포효하는 사자처럼 코드를 난타하는데, 이러한 에너지 분출은 1악장의 명료한 마무리로 이어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스포츠카의 빠르기와 고급 호텔에서 배어나는 향수의 우아함이 공존하는 연주였다.

    2악장 Largo에서는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켰다. 20대 초반의 내면에서 어떻게 이런 깊이 있는 연주와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임윤찬은 매 순간 놀라운 아티큘레이션을 이어갔다. 파리 관현악단과 임윤찬의 소리 궁합은 2악장의 정서적 폭발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2악장 같은 발라드 연주에서는 관악기 파트의 세심한 연주 흐름이 굉장히 중요한데, 클라우스 메켈레는 단원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품격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심벌즈와 현악 글리산도가 3악장 Allegro vivace 익살스러운 시작을 알리고, 임윤찬의 손가락은 피아노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첫째 날 연주가 1941년 버전에 충실하면서도 임윤찬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멋을 살렸다면, 둘째 날은 조지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처럼 몰고 갔다. 마치 스윙 재즈 연주 한 편을 감상하듯 3악장은 비상하듯이 연주했다.
    공연 후 서로 포옹하는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 / 사진. ⓒ이진섭
    공연 후 서로 포옹하는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 / 사진. ⓒ이진섭
    전반적으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부드러운 터치로 연주의 멋과 맛을 살린 임윤찬의 연주는 낭만주의적 재즈 같았다. 클라우스 메켈레가 포디움에서 춤추듯 지휘할 때, 임윤찬의 피아노도 이에 맞춰 응수했다. 이 둘은 무대에서 계속 무언의 교류를 나누며 우아한 파드되를 추고 있었다. 클래식 황금기가 눈앞에서 펼쳐진 느낌이었다. 연주를 마친 둘은 매우 흡족한 듯 활짝 웃으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흡족한 표정의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 / 사진. ⓒ이진섭
    흡족한 표정의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 / 사진. ⓒ이진섭
    임윤찬의 <라피협 4번>외에도 이날 프로그램은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 M.68)>과 생상스의 <교향곡 3번:오르간(Symphony No.3 "Organ" in C minor, Op 78)>으로 이뤄져 있었다. 둘 다 프랑스의 기념비적인 작곡가들인데, 파리 관현악단은 왜 이 곡을 프랑스 연주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연주할 수밖에 없는지를 메켈레와 함께 증명한 무대였다.

    <쿠프랭의 무덤>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산책하듯 아름답고 여유롭게 연주했고, <교향곡 3번 오르간>은 교향시다운 색채감과 종교적 희열을 극대화해 연주했다. 2023년 이곳에서 메켈레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Symphony No.2 'Resurrection' in C minor)>을 감상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성장과 여유가 느껴졌다.
    클라우스 메켈레와 파리 관현악단 / 사진. ⓒ이진섭
    클라우스 메켈레와 파리 관현악단 / 사진. ⓒ이진섭
    파리=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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