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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터로 깎은 소, 114년간 아이오와주 여름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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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

    아이오와주 박람회 명물 '버터 소(Butter Cow)'
    미국은 알고 보면 심심한 나라다. 뉴욕이나 시카고처럼 마천루가 들어선 큰 도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로스앤젤레스는 넓게 퍼진 작은 동네들의 집합체라 더더욱 집중된 도시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사실 미국의 정수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이고 거기 살다 보면 사람들은 심심하다 못해 무료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작은 행사라도 있으면 기꺼이 참가해 시간을 보낸다. 동네 학교의 운동 경기 대항전 같은 것들이 좋은 예다. 아니면 농축산물 박람회 같은 것도 있다. 이런 박람회 가운데 주 단위로 열려 규모가 상당히 큰 것들이 있다. 말 그대로 ‘주 박람회(State Fair)’인데, 아이오와주의 행사가 규모와 유명세 양쪽 모두 상당하다.

    미국 영화에서 사람들이 어딘가 모여 관람차를 타고 총을 쏴서 인형을 떨어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는가? 그게 바로 박람회다. 아이오와의 경우 1854년에 시작했다니 17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8월 한여름에 11일 동안 열리는데 백만 명 이상이 찾아온다고 한다. 물론 아이오와도 옥수수와 감자가 유명한, 들판이 전부인 주다.
    사진출처. unsplash
    사진출처. unsplash
    아이오와주 박람회에는 나름의 명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버터 소(Butter Cow)’다. 맞다, 문자 그대로 버터를 깎아 만든 소다. 소가 만들어 내는 크림으로 버터를 만들고 이로 다시 소의 조각상을 만든다니 나름 메타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 버터 소 또한 명물로서 역사가 나름 장구하다. 박람회 자체처럼 170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1911년부터 등장했으니 114년이면 만만치 않은 세월이다.

    1911년 첫 번째 버터 소를 깎아 이 전통을 출범시킨 이는 노르웨이 태생 조각가인 존 칼 대니얼스(1875~1978)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으나 1884년 미국 미네소타주-전통적으로 북유럽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 미술 고등학교에서 조소 교육을 받은 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흉상(1930)을 제작한 앤드류 오코너(1874~1941) 등에게 사사했다.
    존 칼 대니얼스의 버터 소
    존 칼 대니얼스의 버터 소
    버터 소 조각의 전통은 세계 2차 대전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는데, 114년 동안 고작 다섯 명의 조각가가 맡아 왔다는 사실 또한 나름 놀랍다. 기록에 의하면 대니얼스는 대략 10년 정도 박람회를 책임졌고 J.E. 월레스가 뒤를 이어 36년을 맡았다. 1960년에 중책 맡은 노마 라이언은 무려 45년 동안이나 이 명물을 창조해 내다가 2006년, 15년 동안 자신의 조수였던 사라 프랫에게 중책을 넘겼다.

    매년 조금씩 모습이 바뀌는 소를 조각하는 데 대략 270킬로그램 수준의 버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뼈대가 중요하다고 한다. 학창 시절 찰흙 조형을 해 본 이라면 알겠지만, 뼈대가 없으면 견고함이 떨어져 정밀한 상을 만들 수가 없고 버터도 마찬가지다. 일단 나무와 금속 등으로 튼튼한 뼈대를 만든 뒤 버터를 붙여 대략 소의 모양을 잡아 준 다음 조금씩 깎아 내 실제 생물과 닮게 만든다.

    버터가 녹지 않도록 영상 4도의 냉장고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다. 소를 조각하는데 드는 270킬로그램 수준의 버터라면 토스트 1만9200장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버터는 매년 새것을 쓰는 게 아니라 재활용하는데, 최소 십 년은 묵은 것도 있다. 묵을수록 조형에 쓰기가 더 편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부패하지 않는 지방이다 보니 냉장 보관으로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사라 프랫과 버터 소 / 사진. © Iowa State Fair 사이트
    사라 프랫과 버터 소 / 사진. © Iowa State Fair 사이트
    1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이오와주 박람회의 상징 역할을 하면서 버터 소는 이제 친구마저 생겼다. 소뿐만 아니라 같이 전시하는 작품을 하나씩 더 만드는 전통이 1994년부터 새롭게 생긴 덕분이다. 유명한 컨트리 음악 가수 가스 브룩스로 시작된 이 전통은 엘비스 프레슬리(1997)나 해리 포터(2007),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2012, 작품 75주년 기념) 등 다양한 인물이나 캐릭터 등을 선보였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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