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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마저 피범벅된 美내전, 분열의 시대를 관통한 종군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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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24 최초 블록버스터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리뷰

    극단적 '분열'로 최악의 '내전'이 벌어졌다.
    전통 깊은 델리 가게와 베이글 샵, 그리고 레이 찰스의 재즈 클럽의 둥지였던 맨해튼은 이제 화약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 지옥도가 되었다. 늘 인디 음악이 도시를 메우던 브루클린 역시 물이 필요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과 무장을 한 군인들로 가득하다. 이제 미국은 법과 치안이 시민을 지키는 곳이 아닌, 독재와 무장 군인, 그리고 총을 소지한 다수가 무력한 소수를 통치하는 전장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미국에서 일어난 가상의 내전을 소재로 하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이하 ‘시빌 워’)는 양질의 아트하우스 독립영화 레이블로 인정받았던 제작사 'A24'가 5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메가 프로젝트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전투 장면과 스펙터클은 이 영화를 오락성이 짙은 단순 블록버스터 정도로 착각할 수 있게도 하지만, 분명 영화는 보는 즐거움과 단순한 플롯 구조를 주요한 관습으로 삼는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멀다. <시빌 워>는 현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중 가장 급진적인 엔딩을 가진 우화적 작품이다.

    영화는 3선에 승리하며 독재를 이어 나가는 대통령의 연설 준비로 시작된다. 연설의 내용은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거짓 발표다. 현재 미국은 대통령의 독재 권력에 맞서는 서부군(진보 축인 캘리포니아와 보수 축 텍사스가 독재 대통령에 맞서기 위해 연합한 군이다)과 대통령의 연합군이 일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러한 연방 정부의 무차별 폭격과 서로를 향한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 종군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그녀의 스승이자 친구인 뉴욕 타임즈 기자 ‘새미(스티븐 매킨리 헨더슨)’, 그리고 리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아마추어 사진 기자 ‘제시(케일리 스패니)’는 함께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기로 한다. 뉴욕에서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까지 이들이 지나야 할 길은 857마일. 이들은 가까스로 시체 더미와 자경단이 들끓는 도시들을 넘어 백악관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그들이 목도해 왔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일단 <시빌 워>의 이야기적 배경과 스토리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인 감독 알렉스 가랜드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설정을 담고 있다. 예컨대 독재 대통령에 맞서는 세력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연합군이다.

    극단적인 진보 좌파 캘리포니아와 극단적인 보수인 텍사스가 연합한다는 설정은 미국 대통령의 폭정이 이들의 이념을 초월할 정도로 극에 달했다는 암시이자, 현실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블랙 코미디적인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판타지적인 연합이 어떻게 결성되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하는 대신, 실패한 정치와 이념이 어떻게 세상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떤 가치를 따라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아마도 가장 놀라운 반전, 혹은 ‘쇼킹 모먼트’의 절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영화적으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빌 워>의 엔딩은 실패한 정치를 초래한 자에 대한 응징이자, 그러한 세상과 지도자에 대한 경고를 담는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역설인 것은 극단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이 영화가 현재의 한국 관객들에게 놀라운 기시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울을 보며 대사를 외우듯 거짓 연설문을 읊조리는 대통령의 오프닝과 무장 군인들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장면 등을 포함해 <시빌 워>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은 한국의 뉴스 채널에서 본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시빌 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존재들 그리고 그들이 믿는 가치에 대한 언급, 그리고 헌정을 잊지 않는다. 미친 지도자와 집단적 폭력이 만들어낸 재앙 속에서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했으며, 살아남은 누군가는 또다시 남은 이들과 연대를 주저하지 않는다. 새미가 남은 기자들을 위해, 리가 제시를 위해 그랬듯이, 이들의 값진 희생은 (한국판 제목의 부제인) ‘분열의 시대’를 연대의 시대로 향하게 한다. 미래에 대한 종언을 통해 현재를 말하고 있는 <시빌 워>는 그렇기에 더욱더 절실하고, 용기 있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메인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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