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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원 벗어나 치유의 숲으로 간 고흐, 그리고 마주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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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주의 회복 이론, 고흐의 아몬드와 올리브
    고흐는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했던 1년간 발작과 망상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그는 이때 「꽃피는 아몬드(Almond Blossoms)」(1890년)와 약 열네 점이나 되는 올리브 나무(Olive Trees)를 그렸다. 아마도 숲과 나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는 동시에 내면의 지친 심신을 되살리고 비로소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평판에 예민했던 고흐가 나무 그림을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주의 회복 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자가 내면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를 자신에게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연과의 접촉이 제시되고 있다. 어찌 보면 고흐는 나무들을 그리며 자연이 지닌 치유의 힘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었을 것이다.

    고난을 극복하는 치유의 나무

    고흐는 생레미 요양원에서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요안나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아이의 할아버지 이름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의견을 냈다. 하지만 동생 부부는 고흐의 이름인 빈센트로 결정했다. 고흐는 혹시라도 조카에게 자신과 같은 운명이 주어질까 봐 망설였지만, 한편으론 새 생명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감격했다. 그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안은 채 산책을 하던 중 아몬드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밑칠도 하지 않은 캔버스에 바로 붓질을 시작하여 '꽃피는 아몬드'를 그렸다.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73.5 x 92cm, 1890년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73.5 x 92cm, 1890년
    고흐는 비뚤어지고 말라빠진 나뭇가지에 시선을 모았다. 그 가지에서는 상처 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죽은 것 같은 나뭇가지에 새 생명이 피어나는 모습은 "상처받은 삶이라도, 새로운 생명과 희망은 가능하다.”는 그의 신념을 확인해 주었다.

    그 예로 고흐는 온갖 한계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작업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을 떠올렸다.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였던 조토는 그림을 그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세밀화가 안젤리코는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작업을 진행했으며,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는 슬픔에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작업에 몰두했고, 「만종」의 화가 밀레는 적막한 밭고랑에서 고결함을 발견했다. 이런 생각이 고흐의 머릿속을 스치자 그의 눈에는 아몬드의 구불구불한 나뭇가지와 대조적으로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이 들어왔다. 그 파란 하늘에 아몬드 꽃봉오리가 별이 되어 만발했다.

    고흐는 이 그림에 올록볼록한 질감을 강조하며 색채의 대조를 통해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즉 하얀 꽃과 푸른 하늘의 조화를 통해 희망과 이상이 어우러지게 했다. 하얀 꽃망울은 태어날 조카이자 자신의 희망이며, 하늘을 가득 채운 푸른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고흐가 꿈꾸던 예술가로서의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고흐는 요양원에서 최악의 발작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릴 의지를 놓지 않고 꽃이 만개한 아몬드나무를 그렸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더 이상 질병의 고통으로 흩어지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브 숲에서의 착란

    11월이 되어 나뭇잎이 떨어지고 공기가 차가워지자 네덜란드에 있는 가족과 파리에 있는 동생 내외, 그리고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이전처럼 늘 그리워했던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한 자신의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관심이 바뀌어 있었다. 그 순간 고흐는 요양원 담장을 넘었다. 처음 시도했던 요양원 탈출에서 그는 올리브 숲으로 향했다. 숲을 이리저리 탐험하여 숲 전체의 규모와 모습을 살피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올리브 숲에 매혹되어 반복적으로 나아갔다. 다시 병실로 돌아올 때마다 그는 무너졌던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올리브 그림 작업을 통해 "자신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건강이 안정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올리브나무를 그리는 과정은 발작의 고통과 싸우는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무대였다.
    반 고흐 「올리브나무 숲」, 72.6 x 91.4 cm, 1889년
    반 고흐 「올리브나무 숲」, 72.6 x 91.4 cm, 1889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흐는 줄지어 서 있는 뒤틀린 나무와 은빛 잎사귀를 그리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덧 흘러 어둠이 내려앉았다. "완벽히 차분하게 작업 중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착란에 사로잡혔지.” 이렇게 고흐는 1889년 성탄절에 겪었던 발작을 회상하며 편지를 남겼다.

    고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매년 성탄절마다 극심한 고독과 환각에 시달렸고, 1년 전 노란 집에서는 끔찍한 귀 절단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는 요양원에 머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뇌전증의 발작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흐는 이미 9월 무렵부터 12월에 재발할 자신의 증세를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약 열네 점에 이르는 올리브나무 그림을 꾸준히 작업했다. 발작과 환각이 올 테면 오라는 심정으로 올리브나무들을 그렸다.
    반 고흐 「올리브 따는 여인들」, 72.7 x 91.4 cm, 1889년
    반 고흐 「올리브 따는 여인들」, 72.7 x 91.4 cm, 1889년
    작품들은 단순한 형태와 생생한 색감을 통해 나무가 지닌 독창적인 매력을 품어냈다. 거칠고 힘 있는 초록색과 검정색의 붓 터치,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등은 자연의 생명력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올리브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자연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에 대해 고찰했다.

    그렇다면 올리브나무를 그리면서 고흐가 품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처형되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는데, 그곳은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곳이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고흐는 담 너머에 있는 올리브 숲을 겟세마네 동산과 같은 고뇌의 장소로 여겼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나의 소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기도를 했듯이, 고흐 또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고흐가 겪고 있던 정신적 고통과 다가올 증상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화가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결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올리브나무 그림을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리브나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그의 내면적인 강인함과 예술적 의지를 다시 세운 상징적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성탄절 파리의 찬사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굳건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사람을 모델로 삼지 않고 대신 아몬드나무나 올리브나무와 같은 자연을 그리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회복 이론’은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자연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산만하게 흩어졌던 주의를 다시 집중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그것은 탈주(Being Away), 확장(Extent), 끌림(Fascination), 융합(Compatibility)이다.

    첫째, 탈주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확장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더 멀리 높게 보는 것, 셋째, 끌림은 억지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것, 넷째, 융합은 자신의 취향과 적합하게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고흐는 요양원을 벗어나(탈주) 자신의 시야를 숲과 하늘로 넓히고(확장) 나무와 꽃, 하늘에 매혹되었으며(끌림) 거기서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결합할 수(융합)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889년 성탄절 파리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흐를 유난히 아꼈던 줄리앙 탕기 영감의 화방 진열장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전시된 주황색과 노란색 해바라기의 화려한 광채는 파리의 무채색 거리를 환하게 만들었다. 이례적인 색채의 예술 작품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유난히 띄었다. 이런 인기는 당시 파격적인 문장으로 명성을 얻으려 했던 젊은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1865~1892년)의 기사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고흐를 "끓어오르는 예술적 용암을 쏟아내는 무시무시한 미친 천재”라며 극단적인 평을 남겼고 이미 이름을 떨쳤던 고갱과의 교류와 귀 절단에 대해서도 언급했었다.

    하지만 고흐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찬사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선동적 문구는 자신을 더 깊은 우물로 몰아넣는 거짓이라고 여겼다. 오리에의 평가가 사실과의 괴리 속에서 대중의 끔찍한 조롱과 심판을 예고한다고 느꼈다. 자신을 향한 찬사에 이런 거북함을 표했다는 것은 자신의 예술에만 집중하려는 그의 내적 강인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반 고흐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73.6 x 92.7 cm, 1889년
    반 고흐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73.6 x 92.7 cm, 1889년
    고흐의 '아몬드나무'와 '올리브나무'는 그의 삶과 예술 속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들은 고흐가 자연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회복되고 자신과 자신의 예술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결과물이었다. 어쩌면 현대 문명의 번잡함 속에서 우리는 모두 주의력 결핍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의력 회복이 정작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탈주, 확장, 끌림, 융합을 통한 고흐의 새로운 회복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고흐가 극심한 발작에서 자신을 지켰듯 우리도 나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하자.

    김동훈 인문학연구소 ‘퓨라파케’ 대표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민음사)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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