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날다
서정춘

아세요
빠른 힘을 가지고
눈에
귀를 듣는
볕소리
부스러기 리듬인지
모시 빛깔
물맛 나는
시과(翅果) 빛깔인지
아세요
나는 일이
슬픈 일인지
빼빼 마른 기분에
고비사막에서
물을 뜯는
참 시원한 일인지
아세요
바람 맛에
힘이 자란
한 마리
악기(樂器)라고 불러놓고
리듬을 쓰는
글자인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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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실수가 가져다준 행운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잠자리 날다’는 서정춘 시인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10여 년간 고군분투하다 비로소 뜻을 이룬 등단작인데, 그는 뜻밖의 실수가 행운을 가져다줬다고 얘기합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그는 당시 신아일보에 시조, 동아일보에 시를 응모했습니다. 그런데 신아일보사로부터 “시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 소감을 써 보내라”는 전문을 받고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곧이어 실수를 깨달았지요. 두 신문사로 보낸 겉봉의 주소를 바꿔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시조는 아무래도 크게 자신이 없어서 발행 부수가 좀 적은 신아일보사, 자신만만했던 시는 동아일보사로 응모를 했는데, 그런 실수가 빚어지고 만 것이었지요. 생각건대 시가 제대로 동아일보사로 갔을 경우 내 시는 당선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해 마종하가 동아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석권했고, 나는 그 두 군데 작품 앞에 간담이 서늘했기 때문이죠.”

이런 뜻밖의 행운 외에 더 재미있는 얘기도 감춰져 있습니다. 며칠 후 시상식이 끝나고 마포 공덕동으로 심사위원인 서정주 선생을 찾아뵈었을 때였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선생은 사모님을 불러 “저 국화꽃 대궁이 옆에 묻어 둔 포도주 항아리를 통째 뽑아 걸러 오시오”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약봉공 후손인데 자네는?” 하고 물었지요. 사가공 후손이라고 하자 “아하 내가 사가공 후손이었으면 좀 더 으쓱할 텐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다음에 시를 써 와서 내 눈에 들거들랑 저 산호 지팡이를 물려주겠네”라고 했습니다.

서정주 선생이 술에 제법 취했을 때쯤 그가 술의 힘을 빌려 의아스럽던 생각 하나를 여쭈었습니다. “응모작 5편 중 ‘나비제(祭)’에 기대를 했었는데 ‘잠자리 날다’에 낙점을 주신 점이 궁금합니다.” 그랬더니 “그 ‘나비제’는 역시나 신춘문예 작품들에서 비슷비슷하게 저질러진 것이었지, 내가 아니면 그 잠자리는 못 날았네” 하고는 엉거주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웬걸!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무슨 헛것을 본 듯 휘젓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선생님이 어떻게 된 건가 싶었는데 곧 자리에 앉아서는 “내 머리 위로 잠자리가 날았는데 자네는 못 보았나?” 하고 물었습니다. 이어 “내가 그 시 ‘잠자리 날다’를 뽑은 것은 그 시 중에 ‘모시 빛깔 물맛 나는 시과(翅果) 빛깔’에 그만 내가 찬탄했거든. 그러한 것들은 내가 아니면 볼 수가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모님이 들어와서 술이 많이들 취했으니 그만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도 전염이 됐는지 감히 선생 앞에 ‘한 말씀’을 남기고 물러 나왔다고 합니다. “선생님, 실은 당선 통지를 받은 전날 밤 황룡이 우리 집 초가를 덮쳐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늘 같은 스승 앞에서 부린 객기였겠지만, 어쩌면 그 당돌한 생각이 훗날 ‘죽편’ 같은 절창을 낳은 힘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고 보니 시나 인생이나 마냥 엉뚱하기만 한 우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