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참았는데 드디어"…용산 노숙인 '텐트촌' 사라지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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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텐트촌' 더는 못 참아"
노숙인 "내년 추석도 여기서"
노숙인 20여명 거주하는 용산역 '텐트촌'
개발 계획 따라 내년 완전 철거 가능성 ↑
공원 불법 점거 후 온갖 쓰레기 쌓아둬
시민들 "20여 년 도시 미관 해쳤다" 반색
노숙인 "내년 추석도 여기서"
노숙인 20여명 거주하는 용산역 '텐트촌'
개발 계획 따라 내년 완전 철거 가능성 ↑
공원 불법 점거 후 온갖 쓰레기 쌓아둬
시민들 "20여 년 도시 미관 해쳤다" 반색
"편견을 갖고 바라보면 안 되겠지만, 용산역 '텐트촌' 노숙인들이 재산권을 무시하고 국유지에 마음대로 거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무작정 텐트촌을 유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30대 직장인 유모 씨)
서울 용산역 노숙인들이 무단 거주하고 있는 이른바 '텐트촌'이 이르면 내년 철거될 예정인 가운데 노숙인들은 "내년, 내후년 추석도 여기서 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물과 전기가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한때 텐트촌에는 노숙인 거주자가 약 40명에 달했다. 2022년 3월 교량 설치 사업에 따라 일부 텐트가 철거되고, 같은 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일어나며 이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다. 현재는 20여명의 노숙인이 남아 있다.
9일 오전 텐트촌은 다수 노숙인이 식사와 빨래를 위해 용산역으로 빠져나가 비교적 한산했다. 마구잡이로 설치된 텐트들 사이에는 술병과 비닐봉지, 음료수 캔 등 온갖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2년 반째 이곳에 거주 중인 40대 노숙인 A씨는 "노숙인들이 주변을 잘 치우지도 않을뿐더러 쓰레기가 텐트 바로 옆에 쌓여있다 보니 쥐가 들끓는다"며 "기온이 올라가는 한 여름이면 냄새도 고약하다"고 말했다.
텐트는 작은 비닐하우스에 가까웠다. 노숙인들은 각종 판자와 철재를 세워놓고 실제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비닐을 씌웠다. 그리곤 그 안에 캠핑용 텐트를 쳐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냄비, 버너 등 각종 가재도구와 고추장, 참기름 등 양념류도 구비해놓은 모습이었다.
A씨는 "돈이 좀 있는 노숙인들은 제대로 갖춰 놓고 산다. 여기서 간단한 음식도 직접 해 먹고, 휴대폰도 들고 다닌다"며 "주로 용산역에서 충전하는 소형 배터리를 통해 밤에는 램프까지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텐트촌이 위치한 공원은 더 이상 시민들을 위해 활용되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노숙인들이 모인 뒤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그 주변은 각종 풀이 난삽하게 자란 상태다. 공원 내 정자 역시 한 텐트의 지붕으로 쓰이고 있고, 벤치도 곳곳이 파손됐다. 30대 시민 유모 씨는 "예전부터 있던 텐트촌을 왜 아직도 철거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용산역은 외국인도 많이 다니지 않나. 이주 대책 등이 벌써 마련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용산역 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김모 씨는 "솔직히 노숙인을 마주치면 지레 겁부터 난다"며 "퇴근 후 버스 타러 갈 때 교량을 건너는데 텐트촌에 노숙인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면 좀 오싹하다. 미관상으로도 안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다행히 텐트촌은 용산역 일대 개발 계획에 따라 이르면 내년 철거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는 지난 7월 텐트촌 부지를 포함한 이 일대 지역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고지하고, 내년 본격적인 착공을 예고했다. 개발 면적이 강남 코엑스의 2.5배, 사업비는 약 5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앞선 6월 서울시는 텐트촌 옆 철도 정비창 부지의 오염토 정화작업까지 완료했다.
텐트촌 부지는 국가철도공단 소유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따른 철거 등 후속 절차는 관계 기관 간 사업 협의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노숙인들은 천하 태평한 모습이다. 50대 노숙인 B씨는 "여기서 노숙하면서 강제 철거한다는 말 수십번도 더 들었지만 여태까지 잘 버티고 살고 있지 않나"라며 "몇 년 내엔 절대 철거 못 한다. 내년, 내후년 추석도 여기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 대책까지 요구하고 있다. B씨는 "이주 대책이 없으면 노상에서 노숙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만약 고시원이나 쪽방을 잡는다고 해도 당장 생활비가 없으니 금방 나올 수밖에 없다. 몸이 아파 당장 일도 못 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이주 대책은 국토교통부 훈련 1361호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한다. 지침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이들에게 임대 주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용산구청에 따르면 텐트촌 노숙인들은 주거지원 신청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부분 노숙인이 용산구 외 다른 지역을 오가고, 전입 신고도 따로 돼 있지 않아 실거주 여부를 확인할 자료도 없기 때문이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담당 부서가 서울시나 시공사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철거 일정을 전달받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주에 따른 보상' 등 문제를 질의하자 "국가철도공단에 문의해보라"고 답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서울 용산역 노숙인들이 무단 거주하고 있는 이른바 '텐트촌'이 이르면 내년 철거될 예정인 가운데 노숙인들은 "내년, 내후년 추석도 여기서 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쓰레기에 악취까지"…노숙인 모인 '텐트촌' 직접 가보니
용산역 아이파크몰 주차장과 드래곤시티 호텔 사이를 이어주는 공중보행 교량 아래 공터엔 여러 색깔의 텐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숙인들이 철도 정비창 부지 내 작은 공원을 2000년대 중반부터 무단 점거하면서 생겨난 텐트촌이다.물과 전기가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한때 텐트촌에는 노숙인 거주자가 약 40명에 달했다. 2022년 3월 교량 설치 사업에 따라 일부 텐트가 철거되고, 같은 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일어나며 이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다. 현재는 20여명의 노숙인이 남아 있다.
9일 오전 텐트촌은 다수 노숙인이 식사와 빨래를 위해 용산역으로 빠져나가 비교적 한산했다. 마구잡이로 설치된 텐트들 사이에는 술병과 비닐봉지, 음료수 캔 등 온갖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2년 반째 이곳에 거주 중인 40대 노숙인 A씨는 "노숙인들이 주변을 잘 치우지도 않을뿐더러 쓰레기가 텐트 바로 옆에 쌓여있다 보니 쥐가 들끓는다"며 "기온이 올라가는 한 여름이면 냄새도 고약하다"고 말했다.
텐트는 작은 비닐하우스에 가까웠다. 노숙인들은 각종 판자와 철재를 세워놓고 실제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비닐을 씌웠다. 그리곤 그 안에 캠핑용 텐트를 쳐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냄비, 버너 등 각종 가재도구와 고추장, 참기름 등 양념류도 구비해놓은 모습이었다.
A씨는 "돈이 좀 있는 노숙인들은 제대로 갖춰 놓고 산다. 여기서 간단한 음식도 직접 해 먹고, 휴대폰도 들고 다닌다"며 "주로 용산역에서 충전하는 소형 배터리를 통해 밤에는 램프까지 사용한다"고 말했다.
20년 참았으면 충분…내년 드디어 철거되나
용산역 일대를 오가는 시민들은 텐트촌 철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텐트촌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의 정당한 시설 이용을 막는다는 이유에서다.실제로 텐트촌이 위치한 공원은 더 이상 시민들을 위해 활용되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노숙인들이 모인 뒤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그 주변은 각종 풀이 난삽하게 자란 상태다. 공원 내 정자 역시 한 텐트의 지붕으로 쓰이고 있고, 벤치도 곳곳이 파손됐다. 30대 시민 유모 씨는 "예전부터 있던 텐트촌을 왜 아직도 철거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용산역은 외국인도 많이 다니지 않나. 이주 대책 등이 벌써 마련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용산역 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김모 씨는 "솔직히 노숙인을 마주치면 지레 겁부터 난다"며 "퇴근 후 버스 타러 갈 때 교량을 건너는데 텐트촌에 노숙인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면 좀 오싹하다. 미관상으로도 안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다행히 텐트촌은 용산역 일대 개발 계획에 따라 이르면 내년 철거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는 지난 7월 텐트촌 부지를 포함한 이 일대 지역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고지하고, 내년 본격적인 착공을 예고했다. 개발 면적이 강남 코엑스의 2.5배, 사업비는 약 5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앞선 6월 서울시는 텐트촌 옆 철도 정비창 부지의 오염토 정화작업까지 완료했다.
텐트촌 부지는 국가철도공단 소유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따른 철거 등 후속 절차는 관계 기관 간 사업 협의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노숙인들은 천하 태평한 모습이다. 50대 노숙인 B씨는 "여기서 노숙하면서 강제 철거한다는 말 수십번도 더 들었지만 여태까지 잘 버티고 살고 있지 않나"라며 "몇 년 내엔 절대 철거 못 한다. 내년, 내후년 추석도 여기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 대책까지 요구하고 있다. B씨는 "이주 대책이 없으면 노상에서 노숙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만약 고시원이나 쪽방을 잡는다고 해도 당장 생활비가 없으니 금방 나올 수밖에 없다. 몸이 아파 당장 일도 못 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이주 대책은 국토교통부 훈련 1361호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한다. 지침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이들에게 임대 주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용산구청에 따르면 텐트촌 노숙인들은 주거지원 신청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부분 노숙인이 용산구 외 다른 지역을 오가고, 전입 신고도 따로 돼 있지 않아 실거주 여부를 확인할 자료도 없기 때문이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담당 부서가 서울시나 시공사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철거 일정을 전달받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주에 따른 보상' 등 문제를 질의하자 "국가철도공단에 문의해보라"고 답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