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신라면일까, 전 세계 입맛 사로잡은 불닭일까 [뉴스토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뉴스에 스토리를 입히다 (1)
약 30년만에 라면업계 시총 1위 등극한 삼양
'효자' 불닭볶음면 흥행…해외 매출 80% 육박
"절치부심" 농심, 17년만에 국내공장 짓는 이유
'까다로운 소비자'가 K라면 글로벌 열풍 원동력
약 30년만에 라면업계 시총 1위 등극한 삼양
'효자' 불닭볶음면 흥행…해외 매출 80% 육박
"절치부심" 농심, 17년만에 국내공장 짓는 이유
'까다로운 소비자'가 K라면 글로벌 열풍 원동력
20여 년 전 군시절 얘기다.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경비소대의 특성상 농심 신라면이 야식용 보급품으로 지급됐다. “같은 라면만 먹으니 질린다. 바꿔달라”는 병사들 건의에 다른 라면을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신라면으로 달라”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엔 색다른 맛을 즐겼지만 결국 ‘익숙한 맛’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오랜 시간 신라면과 농심이 부동의 라면 1위를 지켜온 저력을 체감했던 경험담이다.
올해 5월 삼양식품 시가총액이 라면업계 부동의 1위 농심을 약 30년 만에 넘어선 것은 그래서 놀라웠다. 삼양의 ‘미친 성장세’는 전적으로 불닭볶음면 덕분이다. 챌린지(도전)를 부르는 특유의 매운맛. 그동안 ‘별미’인 하얀 국물 라면이 인기를 누린 때가 있었지만 익숙한 맛으로 회귀하곤 했다. 때문에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흥행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김치도 매워하는 외국인들이 이렇게 매운맛을 계속 먹는다고? 불닭볶음면은 롱런할 수 있을까? 불닭볶음면 출시 초반, 흥행이 지속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 이유가 있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호기심에 한두 번 먹어볼 순 있지만 일상적으로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12년 첫 출시 후 이미 10년이 넘었는데 성장세는 더 가팔라졌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이 노출돼 주목받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불닭 챌린지가 퍼졌다. ‘뉴 노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불닭 시리즈는 로제·치즈·까르보 등의 새로운 맛이 라인업에 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도 이들 덜 매운맛 비중이 상당한 추세다. 그만큼 매운맛 진입장벽이 낮아져 글로벌 롱런의 조건이 갖춰졌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예측이 쉽지 않지만 당분간 불닭 인기가 사그라들진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 불닭 브랜드를 각인시킨 게 중요하다. 불닭 소스 등 파생 상품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말했다.
삼양의 호실적은 무서울 정도다. 올해 2분기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뒀다. 매출은 42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7% 껑충 뛰었고 영업익도 2배가량 급증한 894억원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21%에 달한다. 업계에선 “믿기 힘든 수치”라고 말한다. 이걸 가능하게 한 요인은 80%에 육박하는 해외 매출 비중이다. 가격 통제가 덜한 해외에서 판매량이 워낙 많으니 수익성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미국에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까르보 불닭은 현지 월마트 기준 판매가 3달러(약 4000원) 수준으로 국내보다 2~3배 비싸다. 전통의 강자 농심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국내 매출 비중(수출액 포함)이 76.4%에 이른다. 게다가 신라면은 지난해 정부의 물가 인하 움직임에 소매가를 50원 내렸다. 삼양이 가격 인하 품목에서 인기 제품 불닭볶음면을 뺀 반면 신라면은 대표 라면의 상징성이 큰 탓이다. 이 같은 물가 안정 요구를 받지 않는 해외 매출 비중이 커진다면? 국면이 확 바뀔 수 있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의 경우 해외에선 국내보다 2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농심이 17년 만에 국내에 수출 전용공장을 새로 짓는 것은 이처럼 K라면 열풍을 탄 해외 매출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농심은 2026년 상반기 부산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연간 라면 5억개 생산 규모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 기존 생산량과 합쳐 라면 수출 물량이 연간 10억개로 2배 늘어난다. 미국법인과 중국법인 생산량까지 포함해 연간 라면 27억개의 글로벌 공급능력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내수 물량까지 더하면 총 60억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등의 서막”이라 할 만하다. ‘클래식’이란 명성에 걸맞게 입맛은 돌고 돌아 결국 신라면일까. ‘뉴 노멀’로 자리 잡은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까. 농심은 해외 매출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릴 수 있을까. 삼양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불닭 의존도가 문제가 되진 않을까. 자신만의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까지 라면 사진을 올려 품평하는 트렌드가 생겨날 정도로 온 국민이 라면 전문가인 만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SNS를 통해 국내 라면 시장이 특이하다고 짚었다. 그는 “과점 시장이라 마음만 먹으면 담합할 수 있는 라면 업체들이 더 많이 투자하고 신제품을 출시한다”면서 ‘까다로운 구매자’ 이론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먹어보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신제품뿐 아니라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같은 레시피(조리법)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분석인 셈이다. K라면의 글로벌 흥행 ‘원동력’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라면 소비자들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올해 5월 삼양식품 시가총액이 라면업계 부동의 1위 농심을 약 30년 만에 넘어선 것은 그래서 놀라웠다. 삼양의 ‘미친 성장세’는 전적으로 불닭볶음면 덕분이다. 챌린지(도전)를 부르는 특유의 매운맛. 그동안 ‘별미’인 하얀 국물 라면이 인기를 누린 때가 있었지만 익숙한 맛으로 회귀하곤 했다. 때문에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흥행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김치도 매워하는 외국인들이 이렇게 매운맛을 계속 먹는다고? 불닭볶음면은 롱런할 수 있을까? 불닭볶음면 출시 초반, 흥행이 지속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 이유가 있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호기심에 한두 번 먹어볼 순 있지만 일상적으로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12년 첫 출시 후 이미 10년이 넘었는데 성장세는 더 가팔라졌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이 노출돼 주목받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불닭 챌린지가 퍼졌다. ‘뉴 노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불닭 시리즈는 로제·치즈·까르보 등의 새로운 맛이 라인업에 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도 이들 덜 매운맛 비중이 상당한 추세다. 그만큼 매운맛 진입장벽이 낮아져 글로벌 롱런의 조건이 갖춰졌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예측이 쉽지 않지만 당분간 불닭 인기가 사그라들진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 불닭 브랜드를 각인시킨 게 중요하다. 불닭 소스 등 파생 상품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말했다.
삼양의 호실적은 무서울 정도다. 올해 2분기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뒀다. 매출은 42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7% 껑충 뛰었고 영업익도 2배가량 급증한 894억원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21%에 달한다. 업계에선 “믿기 힘든 수치”라고 말한다. 이걸 가능하게 한 요인은 80%에 육박하는 해외 매출 비중이다. 가격 통제가 덜한 해외에서 판매량이 워낙 많으니 수익성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미국에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까르보 불닭은 현지 월마트 기준 판매가 3달러(약 4000원) 수준으로 국내보다 2~3배 비싸다. 전통의 강자 농심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국내 매출 비중(수출액 포함)이 76.4%에 이른다. 게다가 신라면은 지난해 정부의 물가 인하 움직임에 소매가를 50원 내렸다. 삼양이 가격 인하 품목에서 인기 제품 불닭볶음면을 뺀 반면 신라면은 대표 라면의 상징성이 큰 탓이다. 이 같은 물가 안정 요구를 받지 않는 해외 매출 비중이 커진다면? 국면이 확 바뀔 수 있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의 경우 해외에선 국내보다 2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농심이 17년 만에 국내에 수출 전용공장을 새로 짓는 것은 이처럼 K라면 열풍을 탄 해외 매출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농심은 2026년 상반기 부산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연간 라면 5억개 생산 규모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 기존 생산량과 합쳐 라면 수출 물량이 연간 10억개로 2배 늘어난다. 미국법인과 중국법인 생산량까지 포함해 연간 라면 27억개의 글로벌 공급능력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내수 물량까지 더하면 총 60억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등의 서막”이라 할 만하다. ‘클래식’이란 명성에 걸맞게 입맛은 돌고 돌아 결국 신라면일까. ‘뉴 노멀’로 자리 잡은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까. 농심은 해외 매출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릴 수 있을까. 삼양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불닭 의존도가 문제가 되진 않을까. 자신만의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까지 라면 사진을 올려 품평하는 트렌드가 생겨날 정도로 온 국민이 라면 전문가인 만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SNS를 통해 국내 라면 시장이 특이하다고 짚었다. 그는 “과점 시장이라 마음만 먹으면 담합할 수 있는 라면 업체들이 더 많이 투자하고 신제품을 출시한다”면서 ‘까다로운 구매자’ 이론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먹어보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신제품뿐 아니라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같은 레시피(조리법)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분석인 셈이다. K라면의 글로벌 흥행 ‘원동력’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라면 소비자들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