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이 태닝을? 피부색에 대한 고정관점을 깬 어떤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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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
피부를 바라보는 미적 시각
창백한 피부 vs 태닝한 피부
피부를 바라보는 미적 시각
창백한 피부 vs 태닝한 피부
미백 효과 화장품
7월과 8월의 열정적인 강렬한 햇살을 뒤로하고 이제 9월의 온화한 햇살을 받으며 인디언 썸머를 즐기려고 해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건강미를 과시하며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태닝을 전혀 하지 않은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보면 왠지 몸이 연약해 보이기도 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피부색에 대한 미적 시각은 참 다르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우윳빛 같은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그을린 피부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구릿빛(프랑스에서는 황금빛 피부)같이 그을린 피부는 건강과 섹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고 야외 레저(해수욕, 스키, 보트, 테니스, 골프, 하이킹..)를 즐길 수 있는 계층으로 재정적 안정 즉 성공의 표시이다.
몇 년 전 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서 프랑스에 진출하고 싶은데 그전에 그 회사의 화장품이 파리지엥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을지 알고 싶다고 내게 요청해 왔던 적이 있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 패션 코스메틱 에디터, 컨셉 스토어, 인플루언서들에게 화장품을 주고 써보라고 했다. 약 2주 후 사용 후기를 받았는데 대부분의 사용 후기에는 화장품의 가장 큰 효능 중 하나가 미백 효과라고 쓰여있어서 사용하는 걸 망설이거나 피부가 하얘질까 봐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월등한 미백효과로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던 이 화장품은 결국 프랑스 진출을 포기해야만 했다.
공작부인 얼굴에 파리가 붙었어요!
유럽에서 구릿빛 피부가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서양의 귀족들은 하얀 피부, 창백한 안색을 유지하기 위해 햇빛을 최대한 가리고 실내에서만 생활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그을린 피부는 야외에서 일을 하는 천민이나 노동 계층의 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얀 분을 얼굴에 지나치게 발라 피부를 상하게 하고 햇을 너무 쪼이지 않아 비타민D 부족으로 결핵과 같은 큰 병에 걸리기도 했다. 서양에서 하얀 피부가 선호되었던 것은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백설 공주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는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일을 하지 않아도 인생을 즐기며 사는 귀족의 삶을 상징하여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얼굴과 목, 어깨, 팔, 앞가슴을 하얗게 화장했다. 흰색 파운데이션은 얼굴의 반점이나 비위생 환경과 식습관으로 생기는 안면홍조, 피곤한 안색 등을 가리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성이 강한 중금속인 납이 주성분이어서 점차 쌀가루나 밀가루 같은 전분으로 대체되었다.
백지 같은 얼굴에 빨간 볼 터치로 화색을 돌게 하고 마지막 포인트로 무쉬(Mouche)를 붙여 악센트를 주었다. 무쉬는 불어로 파리(곤충)인데 이는 검은 점이 마치 얼굴에 붙은 파리와도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검은색 벨벳, 타프타 같은 작은 천 조각으로 최대 15개까지 붙였다고 한다. 무쉬를 눈가에 붙이면 열정적인 사람, 이마에 붙이면 공작부인, 입술에 붙이면 꼬시는 사람, 광대뼈에 붙이면 쾌활한 사람 등등.. 붙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건강하고 매혹적인 황금빛 피부를 꿈꾸다!
1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장이나 석탄 광산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여 창백하고 하얀 얼굴의 노동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상류층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의사들이 건강을 위해 귀족들에게 해변과 자연에서 산책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양산이나 모자, 긴 옷, 장갑 등으로 여전히 피부를 보호했다. 1920년대 코코 샤넬은 프랑스 남부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요트를 탈 때 피부를 보호하지 않아 사고로 피부를 태우게 되었다. 1918년에 파리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고 1921년 N5 향수도 론칭할 만큼 패션계에서 이미 유행을 이끌어가는 유명 디자이너 명성을 갖고 있어서 사고로 태운 피부를 보고 추종자들은 그녀를 모방하려고 피부를 태우기 시작하였다. 결국 코코 샤넬은 본의 아니게 아름다움, 건강, 성공, 사치의 표시로 태닝을 유행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 후 1927년 패션디자이너이자 향수 제조사였던 정 파뚜(Jean Patou)가 첫 번째 썬오일 샬데 오일을 론칭하였다. 이 썬오일은 향수 역할을 병행해 바카라의 크리스탈 병에 담겨 고가로 판매되어 엘리트 계층 고객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1928년 패션 잡지 보그에는 <창백한 피부 or 태닝한 피부>기사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로레알(L’Oreal)의 창립자인 외젠 슈엘러(Eugène Schueller)는 보트를 탈 때 강한 햇빛으로부터 자신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썬 오일을 사용해 보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화학자들에게 자외선 차단 보호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여 1935년 <암브로 솔레르>를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암브로 솔레르와 함께라면 3일 만에 당신도 나처럼 갈색이 될 수 있어>라는 광고 슬로건을 보면 이미 태닝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다. 그 후 1936년부터 프랑스 유급휴가가 자리를 잡으면서 태닝은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1956년 프랑스 남부 고급 해변 휴양지인 생트로페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 브리짓 바르도는 태닝 된 다리를 내놓고 선정적인 춤을 추어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많은 프랑스 여자들은 그녀를 닮으려고 했다. 1960년대에는 비키니 수영복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태닝은 점점 더 사랑받게 되었다. 얼마 전 사망한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랑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출연한 영화 <수영장>에서도 지중해에서의 선정적인 태닝 모습을 볼 수 있었다. 70~80년대 접어들면서는 탑 리스(topless)가 유행하고 누드 해변이 생기면서 오일, 셀프 태닝 등을 이용하여 해변에 가지 않고도 태닝 한 피부를 만들려고 했다. 여름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구릿빛 피부를 갖는 것은 겨울에도 멀리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스키를 타러 간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현상은 인공 태닝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태닝의 위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흑색종 환자 수는 3배로 증가하고 지나친 자연 태닝과 인공 태닝의 결과로 피부암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 죽순처럼 생기던 인공 태닝 센터는 하나둘 문을 닫고 점점 태닝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햇빛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지나친 자외선 노출이나 인공 태닝, 심지어 태닝 알약까지 복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피부 노화와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으니 탄력 있는 구릿빛 피부를 갖기 원한다면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고 자외선이 강한 12시에서 오후 4시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7월과 8월의 열정적인 강렬한 햇살을 뒤로하고 이제 9월의 온화한 햇살을 받으며 인디언 썸머를 즐기려고 해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건강미를 과시하며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태닝을 전혀 하지 않은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보면 왠지 몸이 연약해 보이기도 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피부색에 대한 미적 시각은 참 다르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우윳빛 같은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그을린 피부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구릿빛(프랑스에서는 황금빛 피부)같이 그을린 피부는 건강과 섹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고 야외 레저(해수욕, 스키, 보트, 테니스, 골프, 하이킹..)를 즐길 수 있는 계층으로 재정적 안정 즉 성공의 표시이다.
몇 년 전 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서 프랑스에 진출하고 싶은데 그전에 그 회사의 화장품이 파리지엥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을지 알고 싶다고 내게 요청해 왔던 적이 있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 패션 코스메틱 에디터, 컨셉 스토어, 인플루언서들에게 화장품을 주고 써보라고 했다. 약 2주 후 사용 후기를 받았는데 대부분의 사용 후기에는 화장품의 가장 큰 효능 중 하나가 미백 효과라고 쓰여있어서 사용하는 걸 망설이거나 피부가 하얘질까 봐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월등한 미백효과로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던 이 화장품은 결국 프랑스 진출을 포기해야만 했다.
공작부인 얼굴에 파리가 붙었어요!
유럽에서 구릿빛 피부가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서양의 귀족들은 하얀 피부, 창백한 안색을 유지하기 위해 햇빛을 최대한 가리고 실내에서만 생활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그을린 피부는 야외에서 일을 하는 천민이나 노동 계층의 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얀 분을 얼굴에 지나치게 발라 피부를 상하게 하고 햇을 너무 쪼이지 않아 비타민D 부족으로 결핵과 같은 큰 병에 걸리기도 했다. 서양에서 하얀 피부가 선호되었던 것은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백설 공주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는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일을 하지 않아도 인생을 즐기며 사는 귀족의 삶을 상징하여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얼굴과 목, 어깨, 팔, 앞가슴을 하얗게 화장했다. 흰색 파운데이션은 얼굴의 반점이나 비위생 환경과 식습관으로 생기는 안면홍조, 피곤한 안색 등을 가리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성이 강한 중금속인 납이 주성분이어서 점차 쌀가루나 밀가루 같은 전분으로 대체되었다.
백지 같은 얼굴에 빨간 볼 터치로 화색을 돌게 하고 마지막 포인트로 무쉬(Mouche)를 붙여 악센트를 주었다. 무쉬는 불어로 파리(곤충)인데 이는 검은 점이 마치 얼굴에 붙은 파리와도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검은색 벨벳, 타프타 같은 작은 천 조각으로 최대 15개까지 붙였다고 한다. 무쉬를 눈가에 붙이면 열정적인 사람, 이마에 붙이면 공작부인, 입술에 붙이면 꼬시는 사람, 광대뼈에 붙이면 쾌활한 사람 등등.. 붙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건강하고 매혹적인 황금빛 피부를 꿈꾸다!
1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장이나 석탄 광산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여 창백하고 하얀 얼굴의 노동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상류층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의사들이 건강을 위해 귀족들에게 해변과 자연에서 산책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양산이나 모자, 긴 옷, 장갑 등으로 여전히 피부를 보호했다. 1920년대 코코 샤넬은 프랑스 남부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요트를 탈 때 피부를 보호하지 않아 사고로 피부를 태우게 되었다. 1918년에 파리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고 1921년 N5 향수도 론칭할 만큼 패션계에서 이미 유행을 이끌어가는 유명 디자이너 명성을 갖고 있어서 사고로 태운 피부를 보고 추종자들은 그녀를 모방하려고 피부를 태우기 시작하였다. 결국 코코 샤넬은 본의 아니게 아름다움, 건강, 성공, 사치의 표시로 태닝을 유행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 후 1927년 패션디자이너이자 향수 제조사였던 정 파뚜(Jean Patou)가 첫 번째 썬오일 샬데 오일을 론칭하였다. 이 썬오일은 향수 역할을 병행해 바카라의 크리스탈 병에 담겨 고가로 판매되어 엘리트 계층 고객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1928년 패션 잡지 보그에는 <창백한 피부 or 태닝한 피부>기사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로레알(L’Oreal)의 창립자인 외젠 슈엘러(Eugène Schueller)는 보트를 탈 때 강한 햇빛으로부터 자신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썬 오일을 사용해 보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화학자들에게 자외선 차단 보호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여 1935년 <암브로 솔레르>를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암브로 솔레르와 함께라면 3일 만에 당신도 나처럼 갈색이 될 수 있어>라는 광고 슬로건을 보면 이미 태닝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다. 그 후 1936년부터 프랑스 유급휴가가 자리를 잡으면서 태닝은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1956년 프랑스 남부 고급 해변 휴양지인 생트로페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 브리짓 바르도는 태닝 된 다리를 내놓고 선정적인 춤을 추어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많은 프랑스 여자들은 그녀를 닮으려고 했다. 1960년대에는 비키니 수영복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태닝은 점점 더 사랑받게 되었다. 얼마 전 사망한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랑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출연한 영화 <수영장>에서도 지중해에서의 선정적인 태닝 모습을 볼 수 있었다. 70~80년대 접어들면서는 탑 리스(topless)가 유행하고 누드 해변이 생기면서 오일, 셀프 태닝 등을 이용하여 해변에 가지 않고도 태닝 한 피부를 만들려고 했다. 여름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구릿빛 피부를 갖는 것은 겨울에도 멀리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스키를 타러 간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현상은 인공 태닝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태닝의 위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흑색종 환자 수는 3배로 증가하고 지나친 자연 태닝과 인공 태닝의 결과로 피부암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 죽순처럼 생기던 인공 태닝 센터는 하나둘 문을 닫고 점점 태닝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햇빛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지나친 자외선 노출이나 인공 태닝, 심지어 태닝 알약까지 복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피부 노화와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으니 탄력 있는 구릿빛 피부를 갖기 원한다면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고 자외선이 강한 12시에서 오후 4시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