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돈 내고 봐야지”…4K로 되살아난 ‘선명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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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리마스터링 고전 영화 극장서 인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 재개봉
‘세 가지 색’, ‘마지막 황제’도 관객 만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 재개봉
‘세 가지 색’, ‘마지막 황제’도 관객 만난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그게 최고의 셰프가 재료 손질부터 칼질까지 정성을 다해 차려낸 진미(眞味)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요리가 고운 그릇에 담겨 식탁에 올라왔다.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 극장가엔 맛은 그대로 간직한 채, 멋까지 더한 옛 영화들이 ‘시네필(Cinephile·영화광)’의 입맛을 돋운다. 4K 고화질 리마스터링을 거쳐 스크린에 다시 걸린 고전 영화들이다. 검증된 영화적 완성도와 예술성에 때깔까지 고와진 ‘선명한 클래식’들이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요즘 화질로 보는 ‘영상 시인’의 유작
29년 만에 재개봉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 감독의 ‘희생’이 대표적이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희생’은 지난 21일 개봉 후 사흘간 3467명이 관람하며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다. 입소문 난 상업영화가 아니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란 이름값에 영화 애호가들이 비가 오락가락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평일 극장을 찾았다. 타르코프스키는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을 꼽을 때면 늘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다. 소련 시절 활동한 러시아 영화감독으로, 남긴 작품은 7편에 불과하지만, 영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영상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타르코프스키 때문에 평론가가 됐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싶다”고 할 만큼, 한국 영화인 사이에서도 오랜 세월 예술영화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1986년에 나온 ‘희생’은 타르코프스키가 추구했던 미학을 고스란히 담은 유작이다. 종말의 위기에서 구원의 기도를 올리고 스스로를 불살라 희생하는, 타르코프스키만의 종교적 철학이 담긴 단순한 줄거리가 특유의 롱테이크 연출로 구현됐다. 특히 집이 불타는 장면을 담은 6분 25초짜리 롱테이크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선 1995년 개봉했을 당시 이례적으로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예술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리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영화다. 긴 러닝타임에 느린 호흡, 수많은 상징들로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디지털 작업을 통해 보다 선명해진 화질과 음질로 다시 태어난 걸작을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본다는 건 기적으로서의 영화 체험”(장뤼크 고다르) 같은 영화 거장들의 시선을 보다 선명하게 느낄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줄줄이 걸리는 리마스터링에 끌리는 관객들
4K 리마스터링 작품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넷플릭스 같은 OTT의 등장으로 ‘검증된 작품’만 골라 보는 경향이 두드러진 영화 관람 문화 속에서 ‘한정판’이라 부를 수 있는 클래식 영화들이 각광 받는 것이다. ‘천만 영화’ 아니면 쪽박 차는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상황 속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20만 명), ‘퍼펙트 데이즈’(11만 명) 같은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집에서 수많은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극장에선 ‘이 정도면 돈 낼 가치가 있다’ 싶은 작품을 보려는 게 요즘 관람객들의 생각”이라며 “20대나 30대 관람객 입장에선 말로만 들었던 고전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실제로 올해 극장가에선 고전 영화들이 줄줄이 재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월엔 한국 영화 역대 두 번째 ‘천만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가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고, 지난달엔 뤼크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가 프랑스에서 상영된 것과 같은 137분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극장에 걸렸다. 고전까진 아니지만, 2013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 지난달 관객과 다시 만났다.
하반기에도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파랑, 하양, 빨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세 가지 색’ 트릴로지(삼부작)이 다음 달 재개봉한다. 1988년 아카데미 9관왕에 오른 작품으로, 일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한 ‘마지막 황제’가 10월 재개봉할 예정이다.
유승목 기자
요즘 극장가엔 맛은 그대로 간직한 채, 멋까지 더한 옛 영화들이 ‘시네필(Cinephile·영화광)’의 입맛을 돋운다. 4K 고화질 리마스터링을 거쳐 스크린에 다시 걸린 고전 영화들이다. 검증된 영화적 완성도와 예술성에 때깔까지 고와진 ‘선명한 클래식’들이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요즘 화질로 보는 ‘영상 시인’의 유작
29년 만에 재개봉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 감독의 ‘희생’이 대표적이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희생’은 지난 21일 개봉 후 사흘간 3467명이 관람하며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다. 입소문 난 상업영화가 아니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란 이름값에 영화 애호가들이 비가 오락가락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평일 극장을 찾았다. 타르코프스키는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을 꼽을 때면 늘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다. 소련 시절 활동한 러시아 영화감독으로, 남긴 작품은 7편에 불과하지만, 영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영상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타르코프스키 때문에 평론가가 됐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싶다”고 할 만큼, 한국 영화인 사이에서도 오랜 세월 예술영화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1986년에 나온 ‘희생’은 타르코프스키가 추구했던 미학을 고스란히 담은 유작이다. 종말의 위기에서 구원의 기도를 올리고 스스로를 불살라 희생하는, 타르코프스키만의 종교적 철학이 담긴 단순한 줄거리가 특유의 롱테이크 연출로 구현됐다. 특히 집이 불타는 장면을 담은 6분 25초짜리 롱테이크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선 1995년 개봉했을 당시 이례적으로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예술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리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영화다. 긴 러닝타임에 느린 호흡, 수많은 상징들로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디지털 작업을 통해 보다 선명해진 화질과 음질로 다시 태어난 걸작을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본다는 건 기적으로서의 영화 체험”(장뤼크 고다르) 같은 영화 거장들의 시선을 보다 선명하게 느낄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줄줄이 걸리는 리마스터링에 끌리는 관객들
4K 리마스터링 작품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넷플릭스 같은 OTT의 등장으로 ‘검증된 작품’만 골라 보는 경향이 두드러진 영화 관람 문화 속에서 ‘한정판’이라 부를 수 있는 클래식 영화들이 각광 받는 것이다. ‘천만 영화’ 아니면 쪽박 차는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상황 속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20만 명), ‘퍼펙트 데이즈’(11만 명) 같은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집에서 수많은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극장에선 ‘이 정도면 돈 낼 가치가 있다’ 싶은 작품을 보려는 게 요즘 관람객들의 생각”이라며 “20대나 30대 관람객 입장에선 말로만 들었던 고전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실제로 올해 극장가에선 고전 영화들이 줄줄이 재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월엔 한국 영화 역대 두 번째 ‘천만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가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고, 지난달엔 뤼크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가 프랑스에서 상영된 것과 같은 137분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극장에 걸렸다. 고전까진 아니지만, 2013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 지난달 관객과 다시 만났다.
하반기에도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파랑, 하양, 빨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세 가지 색’ 트릴로지(삼부작)이 다음 달 재개봉한다. 1988년 아카데미 9관왕에 오른 작품으로, 일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한 ‘마지막 황제’가 10월 재개봉할 예정이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