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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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150조원을 넘어 16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자산운용사의 인기 ETF로만 거래 쏠림 현상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좀비 ETF'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내 ETF 시장 순자산총액은 153조4244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말 121조657억원에 비해 32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ETF 상장 종목 수도 작년 말 812개에서 880개로 8.37% 늘었다.

시장 규모는 날로 커지지만 거래량이 적은 '좀비 ETF'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 일평균 거래대금이 500만원 미만인 종목은 40개에 달했다. 이는 전체 ETF의 4.54%로, 20개 중 1개는 제대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해당 기간 흥국자산운용의 HK 종합채권(AA-이상) 액티브, HK S&P코리아로우볼 등 ETF 거래대금은 100만원 미만에 불과했다. 거래량이 적은 저유동성 종목의 투자자는 원하는 가격에 거래할 수 없어 손해를 볼 수 있다.

순자산총액이 50억원 미만인 ETF도 73개로 전체의 8.29%에 달했다. 올해 초 5.5%였던 것에 비해 비율이 높아졌다. 거래소는 반기마다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인 종목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1년 연속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경우 상장 폐지될 수 있다.

업계에선 비슷한 유형의 ETF가 쏟아지는 가운데 대형 자산운용사의 상품으로 수요가 쏠려 좀비 ETF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전날 하루 국내 ETF 거래대금은 4조79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KODEX CD금리액티브(합성) 등 상위 거래대금 상위 10개 종목만 3조원 넘게 거래됐다. 100만원도 거래되지 않은 종목이 77개에 달했다.

자산운용사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ETF 종목을 자진 상장폐지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80개 종목이 상장 폐지됐다. 올해도 28개 종목이 상장 폐지됐다. 강제 상장폐지 규정도 있지만 대부분 자진 상폐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상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 비중이 작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종목은 상장폐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ETF 시장의 경쟁이 격화하며 좀비 ETF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금융상품의 거래가 부진한 건 당연한 일"이라며 "거래량이 떨어지면 투자자가 원할 때 사고, 팔 수 없어 환금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미 상장된 ETF의 종목선정 방식이나 투자전략 등을 이전보다 쉽게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 완화를 검토할 방침이다. 규정이 완화하면 자산운용사는 좀비 ETF를 상장 폐지하는 대신 상품 내용을 변경하는 '구조조정'을 선택할 수 있다. 업계에선 새로운 ETF를 상장하는 데 최소 3개월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가 기존 ETF의 투자 전략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 투자자를 보호할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무리 투자자가 적은 종목이라 해도 수익을 낸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며 "상품 내용을 바꿀 땐 이들에게 향후 투자 전략, 운용 방안 등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