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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번 무대에 서면 100번 이상의 성장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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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스키 발레단 첫 동양인 발레리노 김기민 인터뷰
    "발레는 내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예술"
    <셰헤라자데>에서 김기민.  ⓒAlexander Neff
    <셰헤라자데>에서 김기민. ⓒAlexander Neff
    최근 발레리노 김기민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저녁 공연에는 이런 마음을 춤으로 표현해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한다. 대답을 찾으면 그 모습 그대로 공연해낸다. 이상(마음)과 현실(몸)이 맞아 떨어지는 경지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날아다닌다는 의미로 ‘플라잉 킴’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기민은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발레리노로서는 처음 입단했다.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견습단원으로 입단해 2012년 퍼스트 솔리스트로 승급했으며 2015년 수석무용수로 등극했다. 소속 무용수가 270 여명인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는 15명이 넘지 않는데 만 23세에 위업을 달성해낸 것. 이어 2016년에는 발레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여겨지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남성 무용수 상을 받았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지낸지 어느덧 15년 차. 발레리노 김기민은 유럽 순혈주의가 유독 강한 이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매일 다른 캐릭터로 공연을 하는데 더해 한국과 유럽, 일본을 넘나들며 더 많이 춤을 췄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숨가쁜 일상을 보내는 그가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와 만났다. 2024년 8월 말, 한국의 한 유명 예능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른 차였다. 유독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공연해온 그였기에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예능 출연에 대해 김기민은 "잠시 산책과 같은 것이었다"며 자신의 본업인 발레와 예술관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차분한 어조로 풀어나갔다.
    2022년 서울에서 열린 발레슈프림 공연 중 <해적>을 선보이고 있는 김기민. ⓒNicholas Mackay
    2022년 서울에서 열린 발레슈프림 공연 중 <해적>을 선보이고 있는 김기민. ⓒNicholas Mackay
    “러시아에 처음 갔을 때와 지금이 가장 다른 점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다는 거에요.” 그는 “머릿 속으로 생각한 나의 모습대로,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고, 최근 그래서 정말 행복합니다.”

    무대 위 몸과 마음의 일치를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로 그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꼽았다. “발레에만 매몰되지 않고 발레 바깥의 여러 예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춤은 무용수의 경험에 따라 천양지차거든요. 바쁜 해외 투어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그 나라의 미술, 건축, 역사를 느끼는 시간을 항상 마련했고, 그 시간들이 쌓여 무용수로서 자질의 밑거름이 된 거 같아요.” 다른 분야의 예술을 느끼며 김기민의 춤은 더욱 깊어졌다. 테크닉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고 수준. 그런데 춤을 표현하는 전달력,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신기록을 갈아치우듯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런 경험 덕분에 고전과 컨템포러리를 오가는 데에도 문제가 없고, 다양한 작품 속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하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예를 들면 어제는 <셰헤라자데>를 하고 오늘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내일은 <코펠리아>를 공연하는 식이죠.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웃음).”
    발레리노 김기민이 <파키타>에서 완벽한 도약을 보여주고 있다. ⓒAlexander Neff
    발레리노 김기민이 <파키타>에서 완벽한 도약을 보여주고 있다. ⓒAlexander Neff
    그는 지난해 5월, 한국에서 <발레 슈프림>으로 국내 발레팬들을 만났다. 스스로 10개월 정도 기획해 연출까지 도맡았던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한국 공연을 마치고 러시아 볼쇼이 극장에서 <돈키호테>에 참여했고,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라 바야데르>로 초청받아 무대를 펼쳤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출신인 현 라 스칼라 발레단장이 그를 눈여겨보아 성사된 건이었다. 세계 이름난 극장의 무대를 거의 섭렵했다. “서보고 싶은 극장에서 공연은 다 해봤어요. 그러고보니 2024년, 게스트로서 주역 무용수로 많은 공연을 했네요. 예전부터 꼭 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극장은 딱 한군데가 남았어요.” 그는 팬데믹으로 무산됐던 영국 로열발레단과의 공연이 유독 아쉽다며 계속 기회를 보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과 일상이 춤에 묻어 나오는 발레라는 예술

    김기민은 지난해 북미와 유럽의 발레단이 시즌을 마감하며 하절기 휴가에 돌입하는 7~8월에도 공연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마린스키발레단의 발레리나 메이 나가히사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7회 세계 발레 축제’에 참가했다. 3년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세계 각지에서 이름난 무용수들이 먼저 찾고 싶어하는 갈라 공연이기도 하다. 나가히사의 고국에서 그들은 차이코프스키 파드되(2인무)를 보여주며 월드 클래스의 수준을 객석에 깊이 실감시켰다.
    올해 5월 러시아 볼쇼이 극장 <돈키호테>에 초청받은 김기민이 파트너 레나타 샤키로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그랑 파드되(2인무) 후 피날레 동작을 하고 있다. ⓒDamir Yusupov
    올해 5월 러시아 볼쇼이 극장 <돈키호테>에 초청받은 김기민이 파트너 레나타 샤키로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그랑 파드되(2인무) 후 피날레 동작을 하고 있다. ⓒDamir Yusupov
    김기민이 3년이라는 긴 텀에도 불구하고, 세계 발레축제에 연달아 참여한 이유는 확고했다. 자신의 기량을 알린다기 보다는 다른 무용수들을 관찰하고, 배우기 위함이다. 세계 각지의 무용수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친해지면, 그가 먼저 던지는 동일한 패턴의 질문도 있다. “(너는) 몇시에 일어나? 취미는 뭐고, 어떤 것을 주로 먹니? 연습은 얼마나 해?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을 해요. 대답을 들으면 그들의 삶이 영사기를 틀어놓은 듯 훤히 보여요. 그게 그 사람의 춤에까지 일상이 묻어나는걸 확인하면 신기해요.” 그는 이어 “발레 무용수는 40대면 커리어가 마무리 돼요. 그러니까 춤을 마음껏 출 수 있는 딱 10~20년동안의 생활이 그대로 보여지죠. 그게 영원히 기록될텐데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게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내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바로 발레란 장르의 예술입니다.”
    ⓐBAKi
    ⓐBAKi
    매너리즘은 게으름에서 오는 것

    김기민은 이제 무대 위가 아늑한 집처럼, 편안해졌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있어야만 살아 숨쉬는 느낌을 받고 공연이 없으면 조금 불안하다고도 했다. “다만 기계적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절대로 지양하고 있어요. 저는 100번 무대를 서면 100번 이상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무용수에요. 그러다보니 무대 위가 편해진게 오히려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어쩌나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그의 결론은 ‘연습’이었다. “공연이 없을 때에도 연습을 해서 제 기본 체력을 훨씬 더 많이 늘려놓는다면, 수많은 공연에서 내 춤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더 생길 것이니까요. 매너리즘은 게으름에서 오는게 아닐까 하고 철저히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해 5월 러시아 볼쇼이 극장 <돈키호테>에 초청받은 김기민이 파트너 레나타 샤키로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파드되(2인무)를 추고 있다.  ⓒDamir Yusupov
    올해 5월 러시아 볼쇼이 극장 <돈키호테>에 초청받은 김기민이 파트너 레나타 샤키로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파드되(2인무)를 추고 있다. ⓒDamir Yusupov
    형 김기완(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과 나누는 예술적 교류도 그의 예술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서로의 춤이나 표현력을 모니터링 하는 단계는 지나갔다. 김기민은 “형제가 같은 길을, 그것도 흔치 않은 예술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기에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발레 연습이 제대로 이뤄지는 건 연습실 바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람들과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도 춤에 영향을 미치죠. 러시아의 전설적인 무용수들이 제게 강조했던 게 ‘진짜 연습은 부엌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지금 완전히 알게 됐어요. 형과 대화를 하면서도 깨닫죠. 제가 아웃사이더 기질을 보일 때마다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을 뻗어줬던게 형이기도 하고요.”
    2021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렸던 김기민의 단독 리사이틀 포스터 ⓒMike Vilchuk
    2021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렸던 김기민의 단독 리사이틀 포스터 ⓒMike Vilchuk
    김기민이 마린스키극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공연(리사이틀, 2019년·2021년)을 성황리에 열며 ‘발레 술탄’으로 등극한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팬들은 어서 빨리 그의 리사이틀을 다시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 그는 “수석무용수라고 해서 단독 공연을 여는 기회가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 기회를 두 번씩이나 가져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한 발레리노 전민철의 영입에도 김기민이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김기민은 오로지 전민철의 실력에 그 공을 돌렸다. “후배들의 춤 영상을 단장에게 전달한 적은 민철이 외에도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확신을 줬던건 전민철의 실력이었던 거죠. 저는 (전민철에게) 입단 후 어떻게 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계속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자기의 예술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성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는 전민철과 함께 동료로서 마린스키발레단에서 함께 춤출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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