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거주 주택에 반지하와 지하를 적은 가구 비중이 각각 1.4%, 0.2%였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4년 전만 해도 지하나 반지하 주택이 대략 32만7천 가구에 달했던 셈이다.
이들 지하·반지하 가구는 서울(20만), 경기도(8만), 인천(2만4천) 등의 수도권에 96% 이상이 분포했다.
이런 반지하 가구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반지하 건물 자체가 주택이 크게 부족했던 70~80년대에 우후죽순으로 지어지다 보니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가 우려될 뿐 아니라 요즘처럼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은 장마철에는 침수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게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서울 관악·동작구 일대 반지하 주민 4명이 숨지자 정부와 지자체는 '반지하 퇴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반지하가 퇴출돼야 할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반지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위협받고 있는 아이들의 건강권이다.
분당차병원·강동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공동 연구팀(한만용, 백혜성 교수)은 국제학술지 '아시아 알레르기 면역 저널'(Asian Pacific journal of allergy and immunology)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이 지상의 다른 주거지에 사는 아이들보다 전반적으로 폐 기능 건강 지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연구팀은 도시 지역에 사는 초등학교 5·6학년 575명(10~12세)을 주거 형태에 따라 반지하(25명·4.3%), 1~5층(311명·54.1%), 6층 이상(239명·41.6%)으로 나눠 폐 기능을 측정하고 알레르기 기도 염증과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기도 염증은 호기산화질소(FeNO) 측정을 통해 평가했다.
산화질소는 인체 내에서 만들어지는 중요한 신호전달물질 중 하나로, 기도에 염증이 있는 경우 숨을 내쉴 때 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호기산화질소 검사에서 수치가 높을수록 천식 등의 알레르기 호흡기질환 위험이 높다고 본다.
이 외에도 알레르겐 감작검사, 혈액 비타민D 검사,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 비스페놀, 트리클로산과 같은 환경오염물질의 소변 내 대사물질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학적 및 환경적 요인도 이번 분석에 종합적으로 고려됐다.
이 결과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은 1~5층이나 6층 이상에 사는 아이들에 견줘 호기산화질소 농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됐다.
특히 반지하에 사는 아이 중 호기산화질소 농도가 35ppb 이상인 비율은 20.0%로 1~5층(7.1%), 6층 이상(5.9%)보다 현저히 높았다.
또한 연구팀은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의 기도가 비교 그룹보다 저항이 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어떤 이유로든 기도의 크기가 작아져 정상 기도보다 큰 저항을 보였다는 의미다.
분당차병원 한만용 교수는 "아이들의 경우 호기산화질소 농도가 높고 기도저항이 있다고 해서 당장 폐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커가면서 원인 모를 감염성질환 등에 걸렸을 경우 좀 더 취약하게 증상이 나타나고, 만성폐쇄성폐질환이나 천식 등의 호흡기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로 볼 때 이미 반지하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한 만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지하 퇴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 교수는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에게 호흡기 문제가 좀 더 많은 점으로 미뤄 폐 기능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연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면서 "반지하와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건강상의 불이익은 소아에서 특히 더 영향이 클 수 있는 만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도의 사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909년 10월 26일 아침.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18살 소년에 불과했던 유동하의 도움이 있었다. 유동하는 안중근, 우덕순 등을 포함한 7명과 함께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했다. 이토가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전보를 안중근에게 보내 의거를 성공으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역사 판타지 소설 <밤의 학교> 속 주인공들은 당시 유동하와 똑같은 18살 고등학생들이다. 하얼빈 의거로부터 100년 넘게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고등학생 허지환과 그의 친구들은 학교에서 국내 최초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권기옥의 엽서를 발견하고, 학교에서 밤을 새우던 중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들은 헤이그 특사 3인부터 안중근, 윤봉길, 윤동주 등 독립운동가를 차례대로 만나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저자는 2021년 한경신춘문예상을 수상한 허남훈 작가. 첫 장편작 <우리가 거절을 하는 방식>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이다. 그가 역사 판타지 소설 <밤의 학교>를 쓰게 된 계기는 지인이 수집한 엽서를 보게 되면서다. 허 작가는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가 세월의 흔적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있는 엽서들이었다"며 "이 엽서들이 개인의 추억이면서 시대의 조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허 작가는 권기옥이 안창호에게 보낸 엽서를 떠올렸다. 엽서가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그 문을 열고 독립운동가들을 만난다는 이야기의 구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허 작가는 학창 시절 통학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에서 밤을 보냈던 추억을 더해 <밤의 학교>
지난해 본 영화 중 나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작품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퍼펙트 데이즈>로 정했다. 우연히 집에서 다시 보는 동안 크게 감명하고 만 것이다.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어느 변기 칸에서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사정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울고 있었던 듯하다. 시무룩해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던 그는 곧 아이의 엄마와 마주친다. 내내 찾고 있었던 듯 아이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온 엄마는 아이를 붙잡고 잠시 그를 확인하고는,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고 그 자리를 떠난다.여기까지 봤을 때, 이 영화가 벌써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특정 계층을 대표할 작중의 누군가를 쉽게 악인으로 만드는 듯해서. 그런데 엄마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던 아이가 짧게 뒤를 돌아보더니 히라야마에게 손 인사를 하고 그 순간 그는 활짝 웃는데, 그 웃음이 내 이런저런 계산을 단번에 씻겨줄 정도로 해맑아서 마음이 확 풀렸다.이어지는 장면들은 히라야마의 매일매일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 분재에 물을 주고, 면도를 하고, 집 앞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고,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몰아 일터로 가고,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이파리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오래된 카메라로 담고, 일이 끝나면 목욕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서점에 가거나 단골 가게에서 술을 마신 뒤 책을 읽으며 잠에 드는 시간들. 일을 하러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큰 골자는 동일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그 일상이 우리의 하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인 히라야마가 대체로 말이 없다는 점이다. 아예 말
루피노 타마요에게 주목하게 된 계기는 비평가 로날드 크리스트의 언급에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 세계에서 네루다의 시는 해와 같은 존재로 마치 루피노 타마요의 <수박>과도 같이 스페인어권 특유의 강렬한 천둥소리를 들려준다. 반면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달과 같아, 르네 마그리트 그림의 달처럼 프랑스적인 은은한 광채를 보여준다.” 천둥소리 같은 수박이라니! 멕시코 예술과 민중의 발견에 조형적 실험을 결합했던 멕시코 벽화 운동은, (옥타비오 파스에 따르면) 관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봉사하는 웅변조의 회화이자 몸짓이었다. 타마요는 이러한 경향성에서 머물기를 거부했다.여기 작품 <수박>(1955)이 있다. 수박은 타마요가 반복적으로 그린 정물의 주제다. 그는 수박이 주제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이 과일은 잘라서 열었을 때 타원에서 원, 반원, 삼각형, 더 날렵한 쐐기 모양 등 기하학적 변주가 가능하다. 다양한 형태와 씨앗의 배치로써 리듬과 패턴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빨간 과육, 하얀 속껍질, 초록 겉껍질은 멕시코의 상징색과 같지 않은가. 마치 마르게리타 피자의 삼색이 곧 이탈리아인 것처럼.타마요는 1899년 8월 25일 멕시코 오아하카에서 태어났다. 1917년 산카를로스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나 전통적인 교육 방법에 실망해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했다. 1921년 초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 고고학-민족학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문화 유적들을 연구하고 거듭 그렸는데 이때 익힌 형태와 자연스러운 톤의 재현이 이후 그의 초기 정물화와 초상화에 투영되었다. 타마요는 토착 예술의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