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와 활동…친일단체 회원 고발로 체포·총살
진실화해위, 강화군서 항일집회 김동수·김남수 독립운동 인정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선생과 함께 인천 강화군에서 항일독립운동을 벌였던 김동수·김남수 씨의 업적이 뒤늦게 인정받게 됐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0일 전날 열린 제82차 위원회에서 사촌 형제였던 두 사람이 1907년 7월 24일 이동휘 선생과 함께 강화군 강화읍 연무당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 압박에 맞서 싸운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일제 경찰 보조원의 보고서인 '복명서' 등이 근거가 됐다고 진실화해위는 설명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같은 달 30일 강화군 전등사에서 기독교인 400여명·퇴역 군인들과 '합성친목회'라는 대규모 집회를 세 차례 열고 반일 의식 고취에도 앞장섰으나 1907년 8월 21일 총살됐다.

1907년 8월 9일 "야소교인(기독교인)이 인민을 선동했다"는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 회원의 고발로 시작된 봉기 가담자 색출 과정에서 체포된 뒤 호송 도중 총살된 것이다.

진실화해위, 강화군서 항일집회 김동수·김남수 독립운동 인정
진실화해위는 두 사람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동휘라는 거물 독립운동가에 가려져 활동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던 김동수·김남수의 항일운동이 진실규명 됐다"며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다만 조사 결과 두 사람과 김영구 씨가 형제이며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진실규명 신청자 주장과는 달리 세 사람은 형제가 아니었으며 김영구 씨의 독립운동을 증명할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실화해위는 전날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시기 경남·경북·전남·전북 일부 지역에서 좌익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군경에 의해 희생되거나 상해를 입은 민간인 희생자 106명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중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서 희생된 민간인 30명 중에는 15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6명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1950년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 등으로 예비 검속돼 군경에 희생된 민간인 99명, 1948∼1951년 경찰·마을 이장·우익인사 또는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반란군 등에 희생된 민간인 7명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