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친숙한 햄릿 공주님의 막장 복수극…국립극단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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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햄릿>
햄릿 공주 등 등장인물 성별 바꾸고
동시대성 느껴지는 설정과 대사로 각색
정치와 인간 욕망 향한 비판 의식과
물과 빛 활용한 연출 돋보여
7월 29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주 등 등장인물 성별 바꾸고
동시대성 느껴지는 설정과 대사로 각색
정치와 인간 욕망 향한 비판 의식과
물과 빛 활용한 연출 돋보여
7월 29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런 가부장적인 대사가 많다. 1601년에 발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인 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를 복수한다는 막장 치정극. 이야기를 주도하는 주인공도 남자고, 여자 등장인물들은 여리고 소극적인 성질을 지닌다.
국립극단의 <햄릿>은 이런 원작 속 설정을 과감하게 뒤집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 햄릿 왕자를 햄릿 공주로 각색한 것. 주변 인물들의 성별도 뒤바꿨다. 햄릿의 애인 오필리어도 남자 미술가로 설정했다. 원작에 담겨있던 여성에 구시대적인 편견이 담긴 대사와 표현도 과감히 삭제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젠더 이슈를 이야기할 것 같지만 이 공연은 예상을 비껴간다. 뒤바뀐 성별이 '여성'을 이야기하는 소재보다는 <햄릿>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장치로 쓰인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살짝 비튼 <햄릿>이다.
배경은 '어느 때, 어느 곳'으로 뭉뚱그렸다. 인물 간의 관계나 통치 구조는 봉건 제도의 모습이지만 라디오 방송, 의상과 말투에서는 익숙한 현대 사회가 느껴진다. 배경이 되는 국가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생존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위태로운 국제 정세가 연상되는 설정이다. 선왕은 정복과 무력 외교로 살아남았지만 국민은 오랜 전쟁에 지쳐버렸다.
주변 인물 묘사에도 변주를 줬다. 총리 폴로니어스의 두 아들 레어티즈와 오필리어가 원작과 달리 예술가로 설정됐다. 끝없는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과 동떨어진 인물들이다. 원작에서 충신으로 묘사되는 폴로니어스도 한층 복합적인 인물로 그렸다. 죽음을 맞으며 "더러운 왕가놈들"이라고 외치며 무조건적인 충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욕망과 광기에 찌든 권력을 다그친다.

원작과 또 다른 점은 언어. 화려한 비유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대사와 대조되는 직설적이고 단호한 대사가 두드러진다. 인물들의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인물 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그려지고 비판이 날카로워지는 효과가 있다.
배경, 인물, 언어를 현대 사회에 더 맞닿도록 각색해 동시대성을 강화한 작품이다. 현대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관객에게 던진다.

섬세하고 진득한 원작을 뒤틀어 직설적이고 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국립극단의 <햄릿>. 셰익스피어 희곡의 문학적인 매력은 덜하지만 대신 동시대성과 비판의식이 두드러진다. 물과 조명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무대가 매혹적이다. 공연은 7월 29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