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연구·사무직 매니저(사원·대리급)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성과급을 도입하는 내용의 임금 체계 개편을 노조에 제안했다. 현대차가 인사평가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화하는 ‘퍼포먼스 인센티브’(PI) 도입을 공식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 사무직 직무성과급 도입 추진…"호봉제론 미래 대응 못해"
2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노조에 이 같은 제안을 전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더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상자는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연구·사무직 분야 사원·대리급이다. 생산직은 빠졌다.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닌 책임매니저(과장)급 이상 연구·사무직은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성과에 따른 PI 제도 처음 도입

현대차가 노조에 제안한 임금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PI 제도 도입이다. 현대차가 내놓은 호봉제 폐지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직원이 받는 급여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본급은 연차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기본급 대신 상여금 성격의 ‘연장근로수당’에 손대기로 했다. 현대차는 현재 기본급과 근속수당, 통합수당, 단체개인연금 등을 합한 총급여의 15%를 연장근로수당으로 주는데, 이를 ‘퍼포먼스 베네핏’(PB)과 PI로 나눠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 중 PB는 지금처럼 성과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제도다. 오히려 현재 총급여의 15%인 연장근로수당 비율을 15.5%로 높여 직원들에게 더 주기로 했다. 기존 연장근로수당을 PB로 이름을 바꿔 0.5%포인트 더 지급한다는 얘기다.

달라지는 건 새로 도입하려는 PI다. 인사 평가에 따라 직원을 3개 등급으로 나눈 뒤 1등급에겐 총급여의 3%, 2등급 2%, 3등급에게는 1%를 추가로 주는 방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PB란 이름으로 기존 연장근로수당보다 더 주고 추가로 PI를 지급하는 만큼 3등급을 받은 직원도 지금보다 최소 총급여의 1.5%만큼 더 받는 구조”라며 “임금이 줄어드는 직원은 한 명도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 경쟁력 위해선 불가피”

현대차는 성과급 도입에 대한 일부 직원의 불안감 등을 감안해 성과급 차등폭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입사 1년 차 사무직원이 책임매니저가 되기 전까지 7년 동안 계속 3등급을 받으면 총 PI는 1800만원가량으로, 같은 기간 1등급만 받은 직원의 PI(약 2200만원)보다 400만원 적다. 1년에 60만원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눈에 띌 정도의 성과 차등이 아닌데도 현대차가 PI를 들고나온 건 일단 제도 도입부터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 호봉제는 90호봉으로 구성돼 있다. 6개월마다 1호봉씩, 1년에 2호봉씩 올라간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10여 년 전부터 노조에 호봉제 폐지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현대차가 직원 누구도 손해 보지 않고 성과에 따른 차등을 최소화한 시스템을 노조에 내민 건 ‘일단 성과보상제를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는 일단 회사 제안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보상제가 생산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현대차 노조는 울산에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쟁의(파업) 발생을 결의했다. 24일 전체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에서 찬성이 과반이고 앞서 신청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지면 노조는 6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게 된다.

김재후/곽용희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