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의 2011년 작 ‘세안(Wash Up)’. 볼록하게 돌출된 형식이 아니라 안으로 움푹 깎여 들어간 역상조각 형태로 제작됐다.  /토탈미술관 제공
이용덕의 2011년 작 ‘세안(Wash Up)’. 볼록하게 돌출된 형식이 아니라 안으로 움푹 깎여 들어간 역상조각 형태로 제작됐다. /토탈미술관 제공
청년 미술학도였던 이용덕(65)이 탄탄대로를 두고 굳이 험로를 걷기 시작한 건 1984년 무렵이다. 조각의 안과 밖이 뒤바뀐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을 창안하면서다. ‘조각은 볼록하다’는 통념이 뿌리내린 국내 미술계에서 그의 작품은 ‘이상하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동안 역상조각을 세상에 공개할 자신이 없었다.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이듬해 대상을 거머쥘 때도 일반적인 양각 부조를 출품해야 했다. 하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은 꺾이지 않았다. 추상조각 열풍이 휩쓸던 1990년대에도 역상조각에 골몰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던 중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딱 한 작품만 만들고 죽는다면 뭘 할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이용덕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 ‘순간의 지속’이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렸다.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조각과 드로잉 30점을 망라했다. 지난 15일 미술관에선 그의 역상조각 40년을 돌아보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이용덕 작가가 경기 용인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이용덕 작가가 경기 용인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올해 3월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그가 전업 작가로 복귀한 뒤 선보인 첫 개인전이다. 일종의 회고전이냐고 묻자 작가는 손사래 치며 이렇게 답했다. “회고전이라니요. ‘시작전’에 불과합니다. 이제야 어릴 적 꿈꿔온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볼록 나온 조각 같다. 가까이 다가서면 알맹이가 쏙 빠진 듯 움푹 패어 있다. 좌우로 움직이면 조각 속 인물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듯한 시각적 혼란을 일으킨다. 작품을 본 한 어린이는 “사람이 빠져나간 것 같다”고 말했고,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비워짐과 채워짐이 공존하는 전이(轉移)의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역상조각의 제작 과정은 평범한 조각과 다르다. 반(半)입체로 구현한 조각을 먼저 만들고, 이를 거푸집처럼 생긴 틀에 찍어 완성한다. 음각으로 새겨졌을 때 보일 모습까지 상상해 인체 비례를 계산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40년이 지난 오늘도 그의 방식을 남들이 섣불리 따라 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 명동성당에 놓인 고(故) 김수환 추기경상, 관훈클럽에 설치된 정주영·정신영 형제상이 그의 손을 거쳐 역상으로 태어났다.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조각했지만, 이용덕의 주요 관심사는 평범한 인물이다. 엎드려 한가롭게 편지를 쓰는 여자, 청소년들의 농구 시합 등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대상이다. 작가는 “역상조각을 통해 사라져가는 인물들의 과거를 저장하고 싶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지금, 숙원 사업을 묻자 ‘트랜스 플랜트’ 프로젝트를 꼽았다. 관악산 흙을 한 자루 떠 일본에 옮겨 심고, 거기서 새로운 흙을 퍼 다른 나라에 이식하는 실험미술이다. 이리저리 이주한 흙을 최종적으로 한국에 가지고 들어온다는 구상인데, 관공서 허가를 구하지 못해 무산됐다.

또다시 외로운 길을 걷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허가 절차가 쉽진 않겠지만 그것까지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역상조각은 결국 대상이 떠나고 난 빈자리에 새로운 관찰자가 들어온다는 원리를 지녔죠. 트랜스 플랜트 프로젝트도 이런 철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