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똑같은 틱톡·쇼츠 소비…알고리즘이 문화 다양성 죽였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최근 틱톡과 유튜브 등에서 자주 눈에 띄는 영상 중 하나는 국내 뉴스에 실린 한파 관련 보도다. 2021년 12월 이 보도에선 빙판이 된 한강 위로 노란 얼룩무늬 고양이가 지나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사용됐다. 이 영상은 2년이 지난 올해 초 별다른 이유 없이 ‘알고리즘의 마법’을 타고 온라인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각종 패러디와 챌린지 영상을 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영미권 등 해외로 퍼져나갔다.

‘알고리즘의 축복’이란 말이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콘텐츠는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금세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이 된다는 뜻이다. 한번 알고리즘을 탄 노래와 춤, 심지어 음식 등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유행으로 자리 잡는다.

세계가 똑같은 틱톡·쇼츠 소비…알고리즘이 문화 다양성 죽였다
<필터월드>의 저자 카일 차이카(사진)는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를 비롯해 각종 취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믿지만, 대단한 착각”이라며 “온라인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이 전 세계인의 문화적 취향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차이카는 뉴욕타임스 매거진과 뉴요커 등에 알고리즘을 비롯해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문화에 관한 글을 쓴다. 미국에서 나온 이 책은 올해 국내에도 번역돼 출간을 앞두고 있다.

차이카는 “알고리즘이 문화를 획일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 소비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춤, 음식, 장소 등은 알고 보면 소비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선택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플랫폼에서 이용자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사실상 강요받고 있다”며 “콘텐츠 생산자 역시 알고리즘을 타기 위해 유행하는 주제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압력을 받는다”고 말했다.

문화적 획일화는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 등지에 등장한 이른바 ‘힙스터 커피숍’은 저마다 모양새가 비슷하다. 이들은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올라타 유행을 잘 아는 ‘멋쟁이’가 되고 싶은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차이카는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력은 전 세계 사용자에게 미친다”며 “동일한 콘텐츠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매우 원활해지면서 어느 곳에서든 비슷한 콘텐츠와 스타일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동시에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이라는 명분으로 제공하는 뉴스 헤드라인이나 영상, 광고 등은 소비자에게서 콘텐츠를 직접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알고리즘 추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곧 스스로 생각할 의지와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차이카는 “초반에 무엇을 클릭하고 어디에 ‘좋아요’를 누르는지에 따라 알고리즘은 관련 콘텐츠를 연달아 띄워주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어느새 피드는 같은 취향으로 도배된다”고 설명했다.

차이카는 알고리즘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의존해 나타난 웃지 못할 사례를 하나 들었다. 미국의 대표 지도 앱 중 하나인 ‘웨이즈’와 관련된 일화다. 이 앱은 운전자에게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샛길을 안내했다. 문제는 안내를 받은 운전자 대부분이 이 좁은 샛길에 몰렸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은 당시 로스앤젤레스 전체 교통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차이카는 책에서 ‘디지털 봉건주의’란 개념을 제시했다. 구글이나 메타, X(옛 트위터) 등 소수의 정보기술(IT) 대기업이 알고리즘을 무기로 온라인 세상을 지배하고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해가는 현상이다. 차이카는 “과거 농노와 소작농이 토지 소유자인 영주의 부를 살찌운 것처럼, SNS 등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의 관심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림으로써 IT 기업의 수익에 연료를 공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차이카는 알고리즘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언제 어떻게 우리를 조작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화를 찾고 오프라인에서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